[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9)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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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399)



한결같이 백정은 본시 천민이 아니라 귀족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런가 하면 이런 주장도 있다. 백정은 원래 북방에 살다가 한반도로 흘러 들어온 이민족이라는 설이다.

유목민이었던 그들은 야생 동물을 잡아먹으며 생활하였는데 그것이 점점 직업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어느 한 지역에 정착해서 살지 않던 그들은 마을을 찾아다니며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주면서 돈을 벌었다. 그러한 생활방식은 한 지역에서 대대로 뿌리내리고 농사짓는 현지 주민들에게 아주 특이한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거주민들과 화합하기 어려웠던 그들은 자연히 자기들끼리 모여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초기 세종대왕이 그들을 일반 사람들과 동화시키려고 노력하였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그 후 그들은 조선시대 내내 다른 사람들과 격리되어서 차별받으며 살았던 것이다.-



다음날 양지는 고종오빠와 같이 마치 유적지를 탐방하는 심정으로 얼굴도 모르는 고모의 묘소를 찾았다. 사진 한 장도 남아있지 않은 어머니를 그리며 자랐을 고종오빠. 어머니의 죽음에 얽힌 실화를 접하게 되었을 때 만약 종교인 신분으로 닦여진 인격 소양이 없었다면 그 슬픔과 억울함을 어떻게 견뎌냈을 것인가. 양지는 자신이 자주 어머니를 떠올리며 회억하는 것처럼 오빠가 기획하는 ‘형평운동선양회’ 속에는 뼈저린 사모곡 일부가 뭉쳐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부러움 섞어 전하던 아버지의 음성도 상기되었다.

“자식이 와 그리 중한지 때 되모 너그 고모 산소에 한 번 가봐라. 손말명이 무덤이라 흔적만 겨우 남은 걸 너거 오빠가 찾아서 사토를 했는디 봉분도 번듯하게 새로 맹글어서 떼를 입히고 근사하게 석물까지 갖차 놨다.”

제물을 차려놓고 절하는 오빠의 넓은 등을 바라보니 기구하게 끝장 난 모자간의 이별이 어머니께 들은 환영으로 떠올라 어린 아이라면 꼭 껴안아서 품어주고 싶은 애잔함으로 콧등이 시큰해졌다. 절하고 일어나야할 때가 지났지만 오빠는 그냥 엎드려 있었고 가늘게 흔들리던 그의 어깨가 눈에 띠게 조금씩 격렬해졌다. 사무친 그리움으로 달려 올 때마다 그랬을 법한 장면이다. 그리움이구나. 육십이 다 된 어른도 갖고 있는 부모에 대한 응석이구나. 안타까움이구나. 서러움이구나. 양지는 몸을 돌려 서너 걸음 물러섰다. 저 분은 남자라도 저런 풍부한 정감을 가지고 있는데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 나는 어떠했던가. 많이 비교되고 부끄러웠다.

“동생 보는 데는 안 그럴려고 했는데 그만-”

손등으로 젖은 눈을 쓱쓱 닦으며 쑥스러운 변명을 하는 오빠.

“엄마가 그러는데 고모부님도 참 잘생긴 멋쟁이셨대요. 밤마다 정인을 찾아와 사랑의 신호로 피리를 불던 낭만적인 분은 상상만 해도 아름다워요.”

“할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엄마가 참 미인이셨다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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