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위식의기행(93) 허삼둘 고가와 농월정
윤위식의기행(93) 허삼둘 고가와 농월정
  • 경남일보
  • 승인 2017.05.0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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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산 뻐꾸기가 목이 쉬도록 울어대더니 나뭇잎이 푸르고 하루해도 길어졌다. 북적거리던 상춘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화림동 계곡의 농월정을 찾아서 집을 나섰다. 35번 고속도로 지곡요금소를 나와 안의의 광풍루에 올라 헝클어진 상념들을 털어내고 옛 토호의 고택을 찾아들었다. 허삼둘 고택이 인접해 있어서 금천천의 강변을 끼고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야트막한 돌담장을 두르고 널따란 마당이 마련된 허삼둘 고가가 복원공사를 끝내고 뒷정리를 마쳤다. 솟을대문으로 들어서기보다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대문채와 사랑채가 훤하게 들여다보이고, 마당 정면의 작은 출입문이 마련돼 있어 대문 안으로 닫쳐진 공간이 아니라 시원스럽게 열려져 있어 남의 집에 들어가는 것 같은 부담감이 없고 누구든 반기는 것 같은 후한 인심과 넉넉한 인정이 있는 것 같아서 옛 주인의 온기가 따뜻하게 전해 오는 것만 같다.

첫눈에 들어오는 것은 ‘ㄱ’자형의 사랑채이고 옆으로 길게 여염집 같은 4칸짜리 또 하나 별채가 바깥사랑채이고 이와 직각되게 독립된 솟을대문간은 좌우로 문간방과 헛간이 붙은 5칸짜리 건물이다. 사랑채는 가운데 두 칸의 대청마루 좌로는 방이 따른 마루청에 난간을 둘렀고 우로도 난간을 두른 툇마루에 방이 따랐는데 ‘ㄱ’자형의 전퇴가 있는 누각형태로 돌출된 일곱 칸짜리의 커다란 한옥이다. 어찌하여 축대는 간신히 빗물 가름이나 할 정도로 나직하게 지었는지 알 수 없는 연유가 궁금증을 보태는데 바깥사랑채도 일직선으로 나란하게 두었는지 알 수가 없다. 축대 높이 덩그렇게 위풍당당한 고택들이 세도를 과시하며 위압적인데 비하면 갖출 것을 다 갖추고도 과시하지 않고 자세를 낮추었고 간결하고 겸허하여 절제된 외양이 친근함을 자아내는데 안사랑채도 돌려 앉히거나 뒤로 물러 앉히지 않고 다정하게 옆자리에 다가앉혀서 편안하게 배려한 바깥주인의 인성과 인품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안채로 들어가려고 사랑채와 붙은 높은 담장을 따라 돌아서 안대문으로 들어섰다. 네모난 안마당이 괘나 넓적한데 안채 역시 ‘ㄱ’자형이긴 한데 꺾인 굽을 곡면으로 귀접이를 하여 좌우를 끼고 한 칸을 차지하고 있어 마루 바깥쪽의 기둥을 보면 여섯 칸인데 마루 안쪽의 기둥을 보면 일곱 칸으로 굽진 면이 늘어나 있는 특이한 고택이다. 하도 신기하여 대놓고 굽진 면의 판문을 열어 보았다. 꺾어서 굽진 면이 뒤쪽으로는 세 개의 면이 되어 5각형의 부엌이다. 좌우로 부뚜막이 각기 마련되어 취사와 요리에 편리함을 더하였고, 아궁이도 좌우로 나뉘어 있어 양쪽의 온돌방을 한 자리에서 불을 지필 수 있도록 꾸며진 실용적인 부엌이다. 대가족제도 속에서 온종일 매달리듯 한 아녀자들의 부엌생활에까지 세심하게 배려한 선조들의 지혜가 곳곳에서 묻어난다.

사랑채의 ‘ㄱ’자형의 꺾인 부분은 안채 쪽으로 두 칸의 방이 돌출되어 있어 사랑채는 평면도상으로는 ‘ㄱ’자형이 아니고 가로누운 ‘T’자형이라 이 또한 특이한 구조이다. 남녀구분이 엄연한 조선시대에 유년기의 남자애들이 주로 쓰던 방이었고 더러는 친정편의 남정네들이 오면 안채로 들지 않고도 재회나 혹은 기거의 방으로 사용했다니 이 얼마나 배려를 기본으로 한 주거생활의 편이성이 돋보이는 조상들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변화되는 전통가옥의 연구에 중요한 사료로서 국가민속문화재 207호이다.

토호 윤대호의 고가이면서 안방마님의 이름을 따서 굳이 ‘허삼둘고가’라고 불리는 까닭은 알 수 없으나 어린 시절의 외갓집 같은 고택을 뒤로하고 금천천을 끼고 돌아 육십령으로 치닫는 26번 도로로 올라서 화림동계곡의 초입에 들어섰다.

‘좌 안동 우 함양이라’ 하여 선비의 고장이요 유림들의 거유(據有)였던 흔적들이 함양의 곳곳에는 문화유적으로 즐비한데 화림동계곡의 초입에 들어서면 금천천 건너편의 작은 마을 안쪽으로 드높은 홍살문을 앞세우고 대궐 같은 안의향교의 옛집들이 건너다보인다. 향교나 서원을 찾아갈 때마다 솟을삼문은 언제나 주먹만한 자물쇠가 찾는 이를 거절하고 더러는 연락처를 알리고는 있으나 바쁜 손길을 거들지는 못할망정 방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발길을 돌리지만 언제나 아쉬움을 남긴다. 대성전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사당에 들어서서 선현들의 유훈도 되새기며 강학당 마루청에 앉아 역사의 회고를 통한 자아성찰과 자아각성의 현장으로 삼아야 할 문화유산들이 문명한 과학문물에 밀려서 외면당하고 있어 날이 갈수록 자물쇠는 두껍게 녹슬고 있으니 안타까움이 더해만 간다.

발길을 돌려 왕버들나무의 거목들이 우거진 농월정의 주차장에 닿았다. 웬만한 학교의 운동장보다 더 널따랗다. 옥호와 안내판만 보아도 군침이 돌게 하는 산해진미가 전문인 식당들이 종횡으로 늘어섰다. 70년대까지도 겨울 한철 빼고는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유람객들의 노랫소리와 북장구소리가 어우러져서 난장판을 방불케 하는 축제장이었던 곳이다.

식당가의 틈새를 벗어나 계곡으로 내려섰다. 마주한 산기슭에 푸른 솔을 날개 삼고 물 맑은 반석위에 날개 접는 학과 같이 사뿐하게 내려앉은 그림 같은 농월정은 절승이요 선경이라 신선들의 별서이고, 백옥 같은 반석위로 미끄러지듯이 흐르는 물은 손을 담가봐야 물이 흐르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맑디맑은 옥수이고 간간이 하얀 포말을 이루는 물줄기는 크고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푸른빛이 보석 같다.

짙푸른 소를 가로질러 벼랑 끝에 이어진 농월정교를 건넜다. 솔숲 우거진 자드락길을 따라 걸으면 솔바람소리와 물소리가 어우러진 선경의 들머리에 닿는다. 건너다볼 때와는 또 다른 풍경이다. 평평한 너럭바위인 반석은 백옥같이 매끈하고 월연담 휘도는 물은 거울같이 맑다. 만월의 밤이면 하강한 선녀들이 달빛 아래 목욕하던 월연담은 쪽빛이고 ‘월연암’은 백옥이다. 백옥같은 반석이 지천으로 깔린 위로 청정한 계곡물이 비단같이 흐르고 앞산 뒷산 푸른 솔이 만고상청 푸르르니 누구의 소작이기에 이토록 절경일까. 농월정에 올랐다. 범속을 멀리한 절승의 선경이다.



월연담 굽어보며 농월정에 앉았으니

물소리 청아하고 바람소리 소소하여

세상사 억만 시름이 제풀에 떠나네.



농월정 발치의 반석에는 ‘지족당장구지소’라고 커다랗게 음각돼 있어 지족당 박명부 선생께서 지팡이를 짚고 거니시는 뒷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하다. 인목대비의 유배를 부당하다고 광해군에게 직간하다 파직되기도 했으며 청병의 침입으로 남한산성에 들어가 척화를 주장했는가 하면 퇴계이황과 남명 조식의 학문을 절충한 한강 정구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성리학과 예학을 전수받아 현실모순을 지양하고 언제나 직도의 관철을 주장하셨고 예조참판 제주목사 등 관직을 두루 거치신 목민관 문정공 지족당 선생의 옛 모습이 아련한데 중천 높은 곳에서 외로운 백로가 어디론가 날아간다.

 
농월정
허삼둘 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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