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40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401)
  • 경남일보
  • 승인 2017.03.29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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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401)

“남강하고 촉석루 논개만 줄창 팔아먹고 살았지 이 시대에 걸맞도록 뚜렷이 내세울 뭣도 없이 늙은 소처럼 고도 진주는 자꾸 처져내리니, 발전은 답보상태고 쓸 만한 인재들은 하나하나 속수무책으로 떠나보내고. 과연 나부터가 자존심이 있는 인간인가 싶고 한심할 때가 많았지. 이래서는 안 되겠다, 불끈 드는 오기만 믿고 나서서 여러 사람 뜻을 모으고 있긴 한데, 사실은 생각보다 어려워. 묵재 속에서 찾은 불씨가 언제쯤 횃불이 되어 진주를 다시 드높이게 될지.”

“그렇겠죠. 보통 사람들의 심리는 골치 아픈 투쟁보다 그저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걸 바라거든요.”

“여기 사람들이 모두 동생만 같아도 결집이 쉬울 건데….”

“저는 오빠가 말씀하시는 ‘진주정신’이라는 단어가 얼음 꼬챙이처럼 아주 쌈박하게 와 닿았어요. 사람은 뭔가 추구하는 가치관이 높아야 삶의 질도 충만해지고 보람도 있잖아요. 오빠가 필요하다면 저도 무슨 일이든 도울께요.”

“동생의 뜻이 여기까지 왔고, 그만하면 오늘 목표는 성공한 셈인가? 하여튼 천군만마다. 동지! 융성한 정신문화로 자긍심 느낄만한 터전이 형성되면, 돌아 온 인재들로 온 진주가 복닥복닥 들끓을 날도 오겠지?”

희망하는 세상을 미리 그려보듯 그윽한 표정이던 오빠가 상석 위에 진설해 놓았던 술과 안주를 묘역에다 널리 뿌렸다. 눈에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아들의 방문을 받은 어머니의 이웃들께도 나누어 드리는 거란다.

“이제 그만 내려가지. 가다가 내 맛있는 저녁을 살게.”

그러면서 오빠는 굳게 잡은 양지의 손을 청년처럼 흔들었다.

“오빠 정말 감사합니다. 저부터 감화되어 새 정신이 번쩍 나는 것 같은데 지속적으로 애쓴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도 있을 겁니다.”

양지는 그날 사람이 구축하는 가치 있는 삶에 대해 깊은 인식을 가졌다. 누군들 잘 산다는 의식 속에 빛나는 보석 한 아름 관으로 엮고 싶지 않으랴. 하지만 용기 있게 실행하지 못한 뜻은 아무리 훌륭해도 사장되고 만다. 양지 자신 역시 손에 쥔 것이 미흡하다는 핑계로 아직 그런 구체적인 실행은 시도해 본적도 없다. 그러나 오빠는 미미하나마 아직도 혼삿길에는 장애 작용을 하는 자신의 출신성분을 과감하게 드러내며 차원 높은 단계의 진일보를 꾀하고 있다.



진주 정신을 일깨운다는 오빠의 일에 감동하고 간여를 했던 게 직접적인 이유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양지는 곧 떠나리라 작정했던 길을 떠나지 못하고 오빠의 집 가까운 곳에 방을 얻어들었다. 오빠와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정신적인 안정감을 찾게 되었고 또 꼭 거기일 필요 있느냐는 생활터전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열렸던 것이다.

그런 어느 날 의도가 다분히 숨겨져 있는 오빠의 심부름 제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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