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기획/특집
[증언:대한민국]최초 직선 대통령 어떻게 뽑았나장일영(언론인·진주문화예술재단 부이사장)
경남일보  |  gnnews@gn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5.24  02:22:31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건을 맞아 5·9 대선을 치렀다. 65년 전, 우리나라 최초로 직접선거를 통해 최고 지도자를 뽑았던 1952년 제2대 대통령과 제3대 부통령을 선출하는 정·부통령 선거는 어떻게 치러졌을까. 19대 대선을 치른 시점에 한국전쟁이라는 극도의 혼란 속에 치러진 당시 선거를 경남일보는 어떻게 담아내고 어떻게 시사하고 있는지 관련 보도와 논조를 통해 들여다보기로 했다.

당시 정·부통령 선거는 같은 해 7월 4일, 부산 피란국회에서 통과된 이른바 ‘발췌개헌’ 배경부터 이해하는 것이 순서다. 발췌개헌이란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정부안과 내각책임제를 뼈대로 한 국회안을 절충해 통과시켰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첫 번째 헌법 개정이다. 개정 이유는 이승만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것이었다.

이 박사는 당시 국회를 통한 간선제로는 재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대통령 직선제와 양원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부결됐다. 그러자 국회에서 정·부통령 직선제, 양원제, 국무위원 불신임제를 뼈대로 한 발췌개헌안을 제출해 통과시킨 것이다.

이에 경남일보는 7월 6일 1면 머릿기사로 ‘대통령 직접선거 실시, 신라회 주동으로 달성, 발췌개헌안 드디어 가결’이란 제목으로 “대통령 선거는 이승만 박사의 주장대로 국민에 의한 직접선거로 되게 되었고, 따라서 이 박사는 대통령에 재선될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라며 “개헌안의 표결에 있어서 비밀투표가 아니고 기립 찬성 투표방식이었다”고 꼬집고는 “이 대통령은 아직까지 완전한 승리를 거둔 것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으며, 외국의 외교관이나 정계에서 예리한 비판을 하고 있는 편도 있기 때문에 이 대통령의 앞길도 결코 순탄한 것은 못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7월 15일에는 ‘민주 민성(民主 民性)과 대통령 이 박사 하야설의 의당성’이라는 사설을 통해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자유당 당수이며, 국민회와 한청(韓靑·대한청년단)과 한부(韓婦·대한부인회)의 총재 등 직명자인 이승만 박사에게 고하노니, 오인(吾人)은 당적도 회적도 없는 오직 국적자(國籍者)의 이름으로 고하노니, 오로지 당운(黨運)과 회운(會運)은 오불관(吾不關)이되 국운을 생각하는 시민으로 고하노니…” 라며 ‘고하노니’를 세 번이나 전제하고, “차대(次代) 대통령 입후보를 ‘고사(固辭)’한 노혁명가의 충정을 여기 찬양하려 한다”고 했다. 여기에 ‘고사’란 말은 이 박사가 발췌개헌 후 “차기 대통령 후보 출마 의사가 없다”고 했기 때문이다.

사설은 이어 같은 달 19일로 예정돼 있는 자유당 전국대회를 겨냥, “19일 자유당 전국대회는 대전 하늘이 미어지도록 이 박사가 차기 대통령으로 나설 것을 외쳐 부르리라. 그러나 민성이 어두워 세계인으로 하여금 ‘빈곤의 정치, 정치의 빈곤’을 비난받았던 민국 초대 정부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전 부분에 유한을 남긴지라. 이미 80고령을 초야 폐허의 영원한 대통령으로서 만백성의 통곡과 기한(飢寒)을 견문한다면 진정 구국대도가 활연하리니, 대통령과 당수 및 총재되어 구중 관저에서 문무백관으로 옹위되면 오매불망하는 민정 민성을 더욱 멀게 하여 민국과 민족 만대에 천희적 구주(救主)되기를 그릇칠까 두렵다”는 장문을 통해 ‘고사’하겠다면 하야하라는 논조를 펴고 있다.

또한 당시 후보 등록 마감일인 7월 26일자 사설은 ‘10일(拾日) 자유와 직선’이란 제하에 “…특히 10일간이란 세계 대통령 직선사상 공전절후(空前絶後)한 단기간 동안에 여당계 이씨처럼 월등한 지명적(知名的) 우선조건에 적대하는 타출마 제씨에 대하여 12분의 자유분위기 보전이 있어야 할 것은 백만설(百萬說)로 강조하고도 과언일까”며 “근자 거리에 주최 없는 벽보를 붙이고 반장이 취지 없는 대회장 동원을 전령하여 자유당계 양 이씨(주:이승만 이범석) 정·부통령 추대국민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어디에서 시킨 것인지 모르나 자유분위기를 해치는 것으로 이런 짓은 “주권 선거민과 추대되는 자 쌍방이 떳떳지 못한 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비판적 사설이 나가던 날 밤 11시 쯤 군복 등을 입은 10여 명이 신문사를 난입해 공무국 인쇄시설을 파괴해 신문을 만들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전시(戰時) 중이라 통행금지 시간이 엄연했던 때였는데 통금이 넘은 시간에 침입해 저지른 것이었다. 간신히 호외로 테러 사실을 알리고 1주간의 본의 아닌 휴간을 한 뒤 투표일 하루 전인 8월 4일에야 다시 발간하게 되었는데 테러는 비판적 보도와 논조에 대한 불만세력에 의한 소행이었다.

선거 결과 이승만 조봉암 이시영 신흥우 4명이 출마한 대통령에 이승만, 함태영 이범석 조병옥 이갑성 이윤영 전진한 임영신 백성욱 정기원이 겨룬 부통령에 함태영이 당선되었는데 기권 무효표가 유달리 많았다. 이에 대해 신문은 최초로 실시된 정·부통령 직선에 대한 이해 부족과 전시 상황으로 인한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운동기간이 짧고, 자유분위기 보장이 안 된데다 누가 출마했는지조차 모르고 투표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등을 지적하며 비판기능을 견지했다.

65년이 지난 지금 당시 경남일보가 지적한 ‘빈곤의 정치, 정치의 빈곤’이나 ‘구중궁궐’이 아닌 ‘구중 관저 문무백관 옹위’라는 ‘불통’이 성큼 다가섰던 5·9 대선에 시사하는 울림이 크다 하겠다.

장일영 전문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경남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