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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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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5.30  00: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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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407)

자존심이라고요. 의문을 담은 양지의 시선이 앞에 있는 주승에게로 나아갔다. 이제껏 자신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억세게 곤두세워 온 것이 바로 그 자존심이었던 까닭이다. 여러 잔 마신 찻물의 양에도 불구하고 양지의 속마음이 탔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앞에 앉은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잘 전달시킬까. 말주변이 없는 편도 아닌데 이 순간에 필요한 적확한 말은 전혀 생각날 기미도 없이 막막할 뿐이다.

양지의 내심을 꿰뚫고 있기라도 한 듯 주승의 말이 이어졌다.

“보살의 눈에 어린 의구심이 무슨 뜻인지 알지요. 설령 부처님은 안 믿는 사람이 많아도 자기 어머니를 안 믿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그것은 어머니가 아무리 비루한 여인일지라도 그 속으로 내가 나왔고 나를 낳을 순간에 바친 그분의 희생과 봉사에 대한 거룩함을 이미 영혼에 새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여인인 것을 비하하고 어머니 되기를 거부하면 세상의 모든 생명들은 결국 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젊은 여성들은 흔히 자존심을 내세우는데 자존심과 자존감은 다른 겁니다. 자존심은 남과 경계를 짓는 것이고 자존감은 나를 나 그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자존심은 세다하고 가존감은 강하다고 합니다. 이 세상을 아름답고 평화스럽게 가꾸고 전승시켜 나갈 수 있는 열쇠는 자존감 강한 어머니들의 거룩한 자비심뿐입니다.”

양지는 한 참 생각의 깊이 속으로 자맥질해 들어갔다. 자존심과 자존감의 차이, 얼핏 비슷한 말 같지만 깊이나 폭은 많은 차이가 있다. 그 순간 양지는 쿵쾅거리는 가슴의 동계를 느꼈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감동의 파장이었다.

‘그래 나는 여자다. 나는 여자다. 나를 인정하는 강한 자존감 하나면 흔들리는 마음을 감 잡아서 이 큰 지리산처럼 묵중하게 나 자신을 이끌 수도 있으리라.’

양지는 다시 주승에게 차를 올리고 싶었다. 그 때 무엇인가를 박차고 뛰어가는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허어 저 놈들이.”

중얼거리면서 주승은 양지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궁금증어린 양지의 표정을 읽은 주승이 미소를 머금으며 지그려 놓았던 방문을 밀었다. 도망가던 아이를 쫓던, 첫눈에도 나이는 많으나 어리숙해 보이는 덩치 큰 소년이 스님을 보고 뛰어오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어허 동생이 또 형님을 약 올린 게로구나. 옛다, 네 동생도 하나 주고 갈라 먹어라.”

주승은 찻상에 얹혀있던 사과 두 쪽을 울고 있는 소년에게 내려주며 저쪽에서 생쥐처럼 몸을 숨기고 이쪽을 내다보고 있는 작은아이를 가리켰다. 그쪽으로 어정어정 걸어간 큰애로부터 과일 쪽을 나누어 받은 작은 아이의 손이 자연스럽게 뻗어 덩치 큰 친구의 허리를 끌어 잡는다. 이런 모양을 대견한 듯 지켜보던 주승이 덧붙여서 설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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