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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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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1  23:5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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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2 (410)

양지가 텔레비전 쪽으로 눈길을 돌리자 같이 그쪽을 돌아보던 주승이 흠흠 눈을 감고 염송을 했다. 그런 뒤 덧붙였다.

“나 역시 각성하신 옛날 선사들처럼 올곧지 못한 정신인 것을 누가 따진다면 고백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래서 저 티비는 변명 같지만 세상 물정이나 흐름을 바로 알기 위한 공부를 한답시고 업경대 삼아서…. 이런 산골까지 문명의 이기가 들어오니 자운이 그랬듯이 저도 서서히 타락하고 있는 걸로 보이겠지요?”

“타락하는 승려. 그런 고백을 스스로하시는 스님이 오히려 저는 참 진실한 종교인일 거라는 믿음이 가는데요.”

“허허어, 대각은 물 건너갔지만 솔직은 하다는 말씀이지요? 사실 요즘은 보살님처럼 유식한 불자들이 하도 넘쳐나는 세상이니 중노릇하기도 힘들답니다. 경전을 인용하면서 설법을 하기도 전에 한발 더 앞선 단계를 들고 나오니 원.”

“그건 그래요 스님. 신도들 보고 반말이나 찍찍하면서 거드름이나 피우고 시주 많이 하는 신도들하고만 어울리는 그런 주지가 있는 절은 건물은 크고 웅장하지만 사이비 같아서 안 좋아요. 빈자일등의 본질이 무시되고 있잖아요. 또 절도 투자건물처럼 팔고 사기도 한다니, 이유야 분명 있겠지만 그런 말도 참 듣기 거북했어요.”

“하하, 가난한 우리 절 부처님이 대우받는 것 같은데요. 열린 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듯이 속이 뚫리는 것 같습니다만 몸 둘 곳을 모르게 부끄럽습니다. 종교의 세속화도 곧 승려들의 해이된 마음가짐의 증거 아니겠습니까.”

승속의 경계를 떠난 소탈함으로 대화는 격의 없이 수월하게 이어졌다.

“저 역시 종교의 중요성을 그리 깊이 갖고 있지는 못했지만 불가해한 어떤 끌림이 있기는 한 데 잘 모르겠어요. 절에 가서 부적을 받아오고 이삿날을 받아오고, 그러고도 또 미심쩍어서 점집에 점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오늘 여기서 스님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은 현실감이 미약해요.”

“보살님 말씀도 그게 사실은 진정일 것입니다. 기계문명이 발달됨과 동시에 인간심은 갈밭을 헤매는 고양이처럼 불투명한 장래에 대한 불안과 번민에 시달리다 못해 일탈을 일삼게 되는 것입니다. 심산 토굴에서 오도송을 추구하는 진실한 구도자도 많지만 저처럼 절집을 책임 맡고 있는 승려들은 노후에 대한 막연함 때문에 은거할 토막 하나라도 마련하려고 잿밥에 신경을 쓰게 되는 것도 사실적인 고백이고요.”

“부처님을 모셔놓은 절집에서 점을 봐주고 문전성시를 이루는 무당 절이 많은 것도 그런 맥락의 하나겠죠.”

“무당 절 무당 절 하시는데, 구시대의 잔재인 미신을 일소한다는 미명하에 마구 정리를 하는 바람에 음성화 되었을 뿐 실은 무속이 한민족의 뿌리 신앙이었으므로 음으로 양으로 찾고 의지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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