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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플러스 <171>남원 봉화산철쭉 꽃길이 매혹적인 백두대간길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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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1  23: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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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화산 너머 백운산방향으로 가는 길


남원 봉화산은 철쭉으로 유명하다. 또 우리나라 큰 등줄기인 백두대간이 지나간다. 그래서 꽃구경을 하면서 대간길을 걸을 수 있는 매력이 있다.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의 지리 인식체계이며 백두산에서 시작돼 금강산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로 총길이 1625㎞이다. 남한구간은 지리산에서 진부령 향로봉까지 690㎞이다. 산맥체계가 아닌 지표 분수계를 중심으로 산의 흐름을 파악한 산지 인식체계이다.

18년 전 본보 백두대간종주팀이 이 구간을 주행한 때는 1999년 초봄 3월 7일, 벌써 20년이 다돼가니 ‘세월이 유수 같다’는 말을 절감한다. 당시 취재팀은 남원 운봉읍 고기리→수정봉→여원치→모래재까지 첫날 산행을 마친 후 이튿날 복성이재 뒷재에서 출발해 복성이재→매봉→봉화산→중재까지 1박 2일 동안 37.9㎞를 산행했다.

봉화산에는 철쭉과 백두대간 외에도 흥부전으로 유명한 흥부마을과 복성이재, 아막산성이 있다.

흥부전은 흥부마을이라는 실존지역의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권선징악의 교훈을 담고 있다. 운봉 일대에는 아영면 ‘성리마을’과 함양 넘어가는 팔량재 아래 동면 ‘성산마을’ 두 곳이 흥부마을이다. 왜 두 곳일까.

전하는 바에는 팔량재 아래 동면 성산마을에서 태어난 흥부가 형 놀부에 쫓겨나 떠돌던 중 장수군 번암면 복성이마을에서 살다가 어떤 도인의 가르침에 따라 아영면 아막산성 아래 성리마을에 터를 잡았고 그곳에서 복을 받았다고 한다. 즉, 전자 성산마을은 흥부의 생거지, 성리마을은 발복지라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성리마을 입구에는 흥부가 박을 타는 장면을 대형조각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 이름모를 꽃
   
▲ 으름잎
   
▲ 으름열매, 연복자 혹은 임하부인이라고도한다.


▲등산로; 백두대간 복성이재→매봉→팔각정→봉화산→임도갈림길이 있는 팔각정→광대치→지지재 하산→승용차 이용 복성이재 회귀

▲오전 10시, 전북 장수군 번암면 논곡리 봉화산로 상 백두대간 복성이재가 출발점이다.

복성이재(601m) 유래는 임진왜란 때 북두칠성에서 출발한다. 변도탄이라는 사람이 ‘전란대비’를 상소하자 조정은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며 그의 관직을 삭탈해버렸다. 하는 수 없이 홀로 전란에 대비해 북두칠성 중 가장 밝고 큰 복성(福星)별빛이 머문 곳, 복성이재에 터를 잡고 움막을 지었다. 곧이어 왜란이 났고 그는 복성의 기운을 받아 전과를 올린다. 훗날 조정은 공을 인정해 큰 상을 내렸고 따르는 사람들이 몰려 복성마을이 됐다.

동쪽 산을 탄다. 오름길은 소나무가 빽빽이 자라고 있는 비교적 완만한 숲길이다. 한민족의 기억 저변에 잠자던 백두대간 길이 다시 열린 것은 불과 30∼35년 안팎, 1984년 여성 산악인 남난희는 76일간 단독으로 대간을 종주했다. 이후 많은이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알려졌다.

어렴풋이 18년 전에는 대간길이 넓지도 선명하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큰길이 돼버렸다. 그동안 수 만명의 대간꾼이 지났기 때문이다.

오전 10시 17분, 매봉(712m)에 닿는다. 모처럼 미세먼지 사라진 맑고 푸른 하늘에 형형색색 산행리본이 바람에 휘날렸다.

 
   
 


철 지난 철쭉의 바다 끝에 진행해야 할 봉화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끝에는 백운산이다.

매봉을 내려서서 팔각정. 그옆에 오른 쪽 아영면으로 내려가는 갈림길도 나온다. 왼쪽이 번암면 동화리 방면이다.

팔각정에서 휴식 한 뒤 ‘봉화산 3.3km’ 이정표를 따라 초록의 숲으로 들어간다. 짙어진 숲속 길이 한결 상큼한 산행을 선사한다.

오전 11시 44분, 팔각정 출발 1시간 만에 봉화산에 닿는다. 산 이름처럼 봉화대가 서 있다. 훼손됐던 것을 복원한 것이다. 산아래 멀리 시가지, 그 앞 들녘에는 모내기철 물을 가득 담은 모판에 물비늘이 반짝였다.

봉화산은 백두대간 남부구간의 중간지점이자 봉화대의 흔적이 존재했던 역사적인 산이다. 작게 시리봉과 봉화산을 잇고 크게는 덕유산(1614m)과 지리산(1915m)을 잇는다. 낙동강과 섬진강의 물줄기도 가른다. 특히 남쪽 치재에서부터 정상까지 군락을 이루는 봉화산 철쭉은 빛깔이 유난히 붉어 산이 활활 불타오르는 착시현상을 일으킬 정도이다. 매년 5월 초 아영면과 흥부골 봉화산철쭉제가 열린다.

등산로는 철쭉의 산답게 키 큰 철쭉이 터널을 이룬다. 으름넝쿨이 키가 큰 철쭉을 휘감아 자라고 있었다. 으름은 목통(木通)통초(通草)라고 부른다. 열매를 연복자(燕覆子), 특이하게 익는 열매의 형태를 보고 임하부인(林下夫人)이라고 한다. 가을에 익는 열매는 달콤하다. 생김새나 맛이 바나나와 비슷해 한국 바나나로 부르기도 한다.

이 외에도 이 산에는 참나무 돌배나무와 돌복숭나무 등 다양한 식생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식생을 보호하기 위해 무인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봉화산을 넘어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지금까지 큰 나무가 주류였다면 백운산 쪽은 키작은 철쭉 등 관목류가 자란다. 벌써 여름 띄약볕에 기온이 급상해 힘든 산행이 계속됐다.

낮 12시 20분, 팔각정이 있는 쉼터(봉화산 쉼터)에 닿는다. 임도가 개설된 곳으로 이정표는 광대치 3.2㎞를 가리킨다. 백운산 못미친 지점의 광대치를 말한다.

이 전망대에서 지리산 뒷모습이 한눈에 조망된다. 왼쪽 써리봉에서 오른쪽으로 중봉 천왕봉 촛대봉 덕평봉 벽소령 바래봉 반야봉 노고단까지….

18년 전 본보 취재팀이 백두대간 종주했을 때 한중기 전 기자는 동행했던 산꾼 B모씨에 대해 이렇게 썼다. ‘저승에 있는 산을 가도 먹을 것과 술은 빼놓을 수 없다는 신념으로 늘 먹거리를 챙기는 B씨의 동료애가 대간 언저리에 묻어났다.’ 실상 그 시절 그는 ‘솥뚜껑 삼겹살’을 예찬하며 가마솥뚜껑을 메고 지리산에 올라갔다. 그 일화는 전설의 영역이다.

그는 지금 ‘명산플러스’ 취재팀에 동행하고 있는 본사 윤전부의 백승대 부장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세월의 무게인지 산행패턴이 달라진 때문인지는 몰라도 솥뚜껑을 더 이상 메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 대신 더 늘어난 것이 있다면 걸쭉한 농으로 주변 사람들을 지나치게 웃긴다는 것이다.

취재팀은 광대치까지 주행한 뒤 백운산을 앞두고 지지재로 하산, 산행을 마무리했다. 철쭉은 지고 없었으나 조금이나마 대간길을 걸었다는 자부심이 잔잔한 감동으로 남았다.

원점회귀한 복성이재에는 백제명 아막산성(전북 지방기념물 제38호)이 있다. 신라에서는 모산성으로 불렀다. 양국이 운봉고원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영역전쟁을 치른 곳으로 본래 가야땅이었으나 신라영역으로 들어가자 백제는 무왕 3년에 아막성을 공격해 신라장군 무은을 죽이고 성을 점령했다.

최창민기자
   
▲ 봉화산에서 백운산 방향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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