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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46>거제 지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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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06  23: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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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심도를 상징하는 하트모양의 조형물.




◇사랑이 이루어지는 섬, 지심도

‘역사는 승자의 것이다’. 이 로마의 격언은 과연 진실일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패배한 자는 자신의 역사를 남길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에 마땅히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진실은 승리자 편이 아니라 약자의 편에 서 왔다. 거기엔 조건이 따른다. 시간이다. 시간의 힘을 빌려야 비로소 진실은 약자와 피해자의 손을 들어준다. 문득 역사의 승자였던 일본의 극우주의자들이 내뱉고 있는 ‘2차대전 때 일본군의 위안부나 난징대학살은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억지 주장이 생각난다. 승자들에 의해 역사가 왜곡되었다 하더라도 그 진실의 흔적은 남아있다. 천혜의 아름다운 풍경을 지닌 지심도에는 아직도 역사적 진실을 담고 있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번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은 일제의 침략으로 인해 상처입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확인해 보고 그 아픔을 위무하기 위해 지심도로 떠났다.

장승포에 있는 동백섬지심도터미널에서 출발하여 20분 정도면 도착하는 지심도, 도착하자 인어공주가 탐방객들을 반겨주었다. 범바위 위에 조성해 놓은 인어상에는 호랑이와 인어공주의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의 전설이 얽혀있다. 용왕의 딸인 인어공주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을 고백한 호랑이, 용왕에게 허락을 받으러 간 인어공주를 기다리다 그리움과 배고픔에 지쳐 그만 죽고 말았는데, 호랑이가 죽어 범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인어공주가 자신을 사랑했던 호랑이를 기다리는 듯 애틋한 표정으로 뭍을 바라보고 있다. 범과 인어공주의 이루지 못한 애틋한 사랑을 안타까워해서일까, 비행기 활주로로 이용했다는 전망대 한켠에 ‘러브러브 하트상’을 만들어서 지심도를 찾는 이들 중, 사랑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새로운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원해 주고 있다.

 
   

▲ 일제때 일본군이 만든 포진지.

   
▲ 지심도 역사관으로 바뀐 탄약고 입구.


◇시대의 희생양이 된 지심도

이처럼 애틋한 전설이 서린 아름다운 섬, 지심도. 지심도(只心島)는 나무가 울창하다고 해서 지삼도(只森島)로 불렸고, 나중에 섬의 모양이 마음 심(心)자처럼 생겼다고 지심도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심도 초입에 들어서면 길은 빽빽한 숲속으로 나 있다. 특히 동백나무가 많아서 동백섬이라고도 불리는 지심도 트레킹 길은 아름드리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대나무, 육박나무 등이 탐방객들을 호위해 주는 것처럼 터널을 이루고 있는 짙푸른 숲길이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휴일이나 성수기엔 정기도선을 자유롭게 배정하다 보니, 찾는 탐방객들이 너무 많아서 온 섬이 몸살이 날까봐 걱정이 될 정도다. 트레킹 길을 따라 북동쪽 끝인 새끝 망루에 닿으면 ‘그대 발길 돌리는 곳’이란 팻말이 탐방객들로 하여금 잠깐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는 지심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발걸음이었다면 발길을 돌리는 지금부터는 지심도의 아픈 역사를 더듬어가는 시간이라 탐방객들의 마음이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지심도의 속살을 파헤쳐 보면 슬프고 애틋한 전설만큼이나 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 지심도는 지리적 조건으로 인해 역사적인 아픔을 안고 살아온 섬이다. 한반도와 일본 대마도 사이의 대한해협을 지나는 길목이어서 일제강점기 때 일본 해군기지로 이용됐고, 해방 후에는 국방부로 넘어가 군사시설로 사용돼 왔다. 2017년 3월 지심도에 있는 국방과학연구소 해양시험장의 소유권이 거제시로 반환되었다. 1936년 일본이 군사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섬 주민을 강제 이주시킨 지 81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지금도 일제강점기의 상흔이 섬 곳곳에 남아 있다. 섬 주변은 온통 바위절벽이라 외부에서 쉽게 접근하기가 어렵고 천연의 요새인 지형과 지정학적인 위치를 감안해 일제가 군대를 주둔시켜 외부인들의 접근을 막았다고 한다. 일제가 지심도를 군사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섬 주민을 강제 이주시킨 뒤, 섬 곳곳에 콘크리트로 포진지와 탄약고를 구축했다. 선박이나 사람들을 감시하기 위한 탐조등(서치라이트) 보관장소를 설치했으며, 대포를 쏘기 위한 장치인 방향지시석을 남쪽(해금강), 북쪽(부산 진해), 동쪽(대마도)을 향해 세워 놓았다. 그리고 경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활주로도 만들었고, 방공호와 발전소 등의 다양한 군사시설을 설치했다. 탄약고는 지금 지심도 역사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편 망루 쪽에는 일제시대 욱일기를 달았다는 국기게양대가 있는데, 새로 철제 게양대를 세워서 2015년 8월 15일부터 태극기를 게양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일제의 군사시설들은 지심도의 슬픈 역사와 이 땅의 아픔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는 듯해 탐방객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넓지 않은 공간인 지심도에 이처럼 수많은 일제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섬이 지닌 아름다운 풍경 이면에 우리나라의 수난사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탐방객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했다.

 
   
▲ 터널을 이룬 지심도 동백숲길.


◇푸른 미래로 출렁이는 섬, 지심도

섬을 일주하고 내려오는 길, 지금은 폐교가 되어 마을회관으로 쓰이는 일운초등학교 지심도 분교에 잠깐 머물렀다. 마을회관이라곤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바닥과 책상엔 먼지만 앉아서 무료함을 달래고 있는 듯했다. 한 칸짜리 교실과 운동장은 탐방객들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는 공간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간 탐방객들끼리 어린 시절 즐겼던 신발던지기 놀이를 했다. 모두들 초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놀이에 빠지기도 했다. 그 순간만큼은 지심도의 절경도, 지심도의 아픈 역사도 모두 잊고 소년소녀가 되어 추억 속의 한 페이지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활용도가 낮은 마을회관을 탐방객들에게 휴식과 함께 옛 추억을 반추하게 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참 좋을 듯했다. 그리고 국방부로부터 소유권을 건네받은 해양시험장을 역사체험관으로 활용하면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지심도의 아름다운 풍경과 더불어 그 뒤에 감춰진 아픈 역사의 속살도 모두 우리의 것이다. 그 역사의 뒤안길마저 사랑하는 것 또한 지금과 미래의 역사를 아름답게 출렁이게 하는 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박종현(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지심도 민박집의 담장 모습
지심도 민박집의 담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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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심도해적왕
지심도는 배를 타고 들어가는 섬입니다. 승선권은 인터넷예매/현장예매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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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1 07: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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