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탄 왕자님이 필요 없는 세상
백마 탄 왕자님이 필요 없는 세상
  • 경남일보
  • 승인 2017.05.3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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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여성 대상 범죄 여전
지난해 12월 중순 새벽,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거리에서 홀로 귀가하던 여성이 지하주차장으로 끌려가 무자비한 폭행을 당했다. 여성은 소리를 질렀지만 날아오는 주먹을 피할 수는 없었다. 가해자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해당 여성이 헤어진 여자 친구와 닮아서 폭행했다고 진술했다. 피해 여성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범죄의 타깃 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성이 안심하고 살기에는 이르다. 직장인 한 모(32) 씨는 “세상이 흉흉하다 보니 부모님이 자꾸 퇴근 후 바로 귀가하길 바란다. 회식이라도 있는 날에는 항상 버스 정류장까지 남동생이 마중 나온다. 혼자인 날이면 통화를 하면서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걷게 된다”라고 말했다. 어두운 밤, 인적이 드물고 가로등조차 희미한 거리는 여성들에게 큰 불안감을 주고 있었다.

대학생 이 모(21) 씨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녀는 “얼마 전 공원 공중화장실에서 몰카를 당했다. 버스 안에서도 몇 번 성추행을 당하고 나니, 어디서든 경계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여성 혐오는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지난달 발표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남성의 ‘여혐 공감 현황자료’에 의하면, ‘김치녀’, ‘된장녀’ 등의 여성 비하 표현에 공감한다고 응답한 남성은 전체의 절반이 넘는 54.2%에 달했다. 이와 같은 혐오의 원인으로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짐으로 인해 일자리를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남성의 박탈감을 들 수 있다. 저소득층 남성에게 여성 혐오가 더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이 그 근거다.

여성 혐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혐오표현 실태와 규제방안 실태조사’에 의해 총 5단계로 설명할 수 있다. 1단계에서는 여성을 비하하는 사람을 찾아 자신의 편견을 정당화한다. 2단계에 이르면 욕설, 조소 등으로 괴롭힌다. 직장 상사가 부하 여직원에게 “여자가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승진도 하려는 건 욕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단계에 해당한다. 이는 3단계로 이어져 확장된다. 경제, 정치, 고용, 주거, 교육 등 사회 전반적으로 차별이 자행되는 것이다. 4단계에서는 ‘강남역 살인사건’처럼 뉴스에 나오는 살인, 강간, 폭행, 협박이, 마지막 5단계에서는 집단 전체에 대한 의도적 말살 행위가 일어난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의자는 평소 여성에게 무시당했다며, 무고한 여성을 살해했다. 그가 정신분열증 즉, 조현병을 앓았던 병력이 있는 환자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피해의식을 느끼는 대상이 남성보다 상대적인 약자인 여성에 한정되어있다는 점에서 농도 짙은 여성 혐오가 깔려 있었다. 사건을 칭하는 이름만 다를 뿐, 영화 ‘살인의 추억’의 모티브인 화성 연쇄살인 사건, 유영철, 강호순 살인 사건 역시 명백한 여성 혐오 범죄라는 주장도 있다.

사건 이후 여성 안전을 위한 대책과 시설은 전보다 늘어났다. 공중화장실법 시행령이 개정되어 신축 건물 남녀 화장실 분리 설치 의무대상 범위가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이 법안에는 맹점이 있다. 2004년 이전에 설치된 건물은 화장실 분리 의무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는 것이다. 경남경찰청은 ‘여성 안전 특별 치안활동’에 나섰고, 창원시는 화장실 구조 개선을 비롯해 CCTV와 안심벨 설치 등 범죄 환경 위험요소를 대대적으로 점검했다.

하지만 분리되었을 때만 안전함을 느낄 수 있다면, 그건 어디까지나 반쪽짜리 평안일 뿐이다. 본질은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들이 일상에서 겪는 혐오와 성차별, 범죄에 대한 공포를 해결하는 것이다. 사소하고 일상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결국 유사범죄는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한국 여성의 22%는 ‘누군가 나를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할까봐 두렵다’고 느낀다. 여성들은 이런 공포에서 자신들을 지켜줄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사회는 동등하게 안전해야 한다.

/오진선 시민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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