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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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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3  01: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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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16)

그녀가 발 디뎠던 대도시는 그 옛날 성남언니가 깨달았던 ‘우물 안 개구리’의 충격 그 이상의,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건물은 산처럼 거대했고 복잡했고 빛나고 빨랐다. 이런 모습은 의식이 뛰어난 사람들의 깨우침과 노력으로 이룩된 결과인 것이다.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왜인지 실감 넘치는 광경으로 양지는 불안과 어지럼증을 느꼈던 그때를 떠올렸다.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어리둥절, 저 혼자 끌어주는 누구도 없이 무작정 상경으로 수도 진출을 한 양지는 한 동안 가만히 앉아서 이왕 맞닥뜨리게 된 세상에서 어떤 생각과 행동으로 길을 찾아 나가야 할지 기차 안에서 해놓은 생각들을 다시 점검해 보았다.

세상은 어마어마하게 넓고 복잡하다. 눈으로 보면 머리카락 한 오라기도 틈입시키기 어려운 위용이 매끄러운 막으로 포장되어있다. 이런 현실 속으로 잠입하기 위한 양지의 계획이나 방법은 아직 맨손 맨 바닥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 순간 희한하게도 어릴 때 부잣집으로 놀러가서 드나들던, 큰 개가 지키고 있던 대문이 아닌 수챗구멍이나 울타리 구멍을 떠올려 냈다. 그로인해 양지는 태어나서 십여 년 동안 제 속에 차곡차곡 담아놓은 삶의 지혜가 공구함 속에 든 연모처럼 수월찮이 많은데 나름 용기와 자신감을 얻었다.

작고 볼품없는 촌병아리 계집아이가 손에 든 것은 달랑 단봇짐 하나. 입던 옷가지와 몇 푼의 돈. 믿는 것은 오직 또랑또랑한 눈동자와 부풀려서 착용한 간덩이가 전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리지만 그녀가 얼마나 똑똑하고 야무진지 눈여겨보는 사람도 없었고. 냉큼 해코지를 해도 간여할 누구도 동행하지 않은 여리고 볼품없는 촌뜨기에 대해 관심을 갖지도 않았다.

흰색인지 회색인지 분간 안 되는 시골 냄새가 풀풀 새겨진 천으로 된 짐보퉁이는 지금 생각해도 낯간지럽게 촌스러운 행색이었다. 그 집을 나서서 생각한 것이 가방이라도 하나 새로 사야지 않을까 였지만 그런 바깥치장에 신경 쓸 만큼 많지 않은 노잣돈이라 어떻게든 참자고 두 눈 질끈 감았다.

서울역이란 곳을 사람들과 같이 빠져나왔으나 어디로 가야할지 아는 데가 없었다. 제 갈데로 사람들이 다 사라지도록 배회하던 양지의 머리에 언뜻 서울 어디에 있다는 한 곳 주소가 떠올랐다. 집주인 선생님의 여동생이 산다는 곳이었다.

‘너를 이렇게 내보려니 너희 어머니한테 아주 미안하다.’ 며 측은한 눈빛으로 주머니에 든 돈 얼마를 손에 쥐어주던 주인 선생님. 할머니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따르기는 해도 네가 어떤 아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는 듯하던 그의 표정에 미온적이나마 담겨있던 겨울 햇귀 같은 따뜻함이 언뜻 들었던 주소를 상기시켜주는 힘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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