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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시론] 가는 세월에 한참 뒤쳐진 형사소송법
정승재(객원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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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0  14: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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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지으면 국가는 형벌을 내린다. 그 벌의 확정은 범죄인에 대한 경찰 수사, 검찰 소추 등을 통해 최종적으로 법원, 즉 사법부가 최종심판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러한 국가형벌권 행사의 전 과정은 형사소송법이라는 절차법으로 규율돼 있다. 고의든 과실이든 범죄를 저지르면 이 법에 근거해 모든 것이 재단되기 때문에 엄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무리가 없다.

이러한 형사소송법에 등사(謄寫)라고 표현된 조항이 자주 등장한다. 이 법 제294조 4에는 ‘피해자 등의 공판기록 열람 및 등사’라는 조문이 있다. 이외의 조항도 ‘등사’라는 표현이 많다. 등사기가 사라진지 꽤 됐고, 따라서 등사라는 말이 소멸된지 십수 년은 됐다. 젊은이 중 등사라는 말을 아는 사람이 거반 없는 실정이다. 여러장 찍어낸다는 개념의 복사(複寫)라는 용어로 교체해야 할 조문들이다. 기술발전에 따른 법률개정 내지는 조문작업이 뒤처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법에서의 ‘인정신문’도 그런 시선에서 보면 개선의 여지가 충분하다. 재판이 개시되면 재판장은 반드시 피고인의 직업을 묻도록 돼 있다. 이름과 연령, 주거지와 함께 물어서 당해 사건의 피고인이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피고인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있어 묻지 않아도 문제없는 임의조항이 아닌, 꼭 물어야 하는 강제조항으로 명시돼 있다. 엄격하게 말하면 그 절차를 생략한다면 법을 심판하는 재판장은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가 된다. 그래서 얼마 전 전직 대통령의 형사재판에서 재판장은 피고인인 전 대통령의 직업을 물었고 그는 ‘무직’으로 답했다.

세상의 트렌드 변화에 부합하도록 인정신문은 임의조항으로 변경해도 무방하다. 경찰과 검찰 수사단계에서 혹여라도 피의자가 바뀌는 경우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법원의 기소단계에서 피고인이 바꿔치기 되는 경우는 거의 불가능하다. 부고(訃告)를 인편이나 전보로 알리던 시절에나 있을 만한 일이다. 첨단 수사과학 장비구축, 고급수사 역량에 따름이다. 아무리 재판의 완벽한 엄중성을 감안하더라도 있지 않을 가능성이다. 여하히 의심할 소지가 있으면 재판장의 재량에 따라 확인절차를 이행하면 무방하다. 인정신문 절차를 임의조항으로 바꿔도 문제없다는 말로 귀결된다.

특히 직업을 묻는 요식은 피고인 인권존중 시각에서 적폐로까지 비약될 수 있다. 피고인도 엄연한 인격권이 있다. 직업을 말하거나 노출하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다. 죄질을 파악하는데 직업의 유무 혹은 성격이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정신문에서의 직업 확인이 필수조건이 될 필요는 없다. 직업을 규정하는 방식과 성격은 과거와 천양지차라는 실정도 이를 뒷받침한다. 평생직장이라는 한 직업이 일생을 포괄하던 시절과 달리, 재택근무나 ‘투잡’과 ‘쓰리잡’, 상근과 비상근, 영리와 비영리, 전업과 부업, 사건발생 직전의 퇴직 등 그 성격이 그야말로 너무나 다양하다.

비단 ‘인정신문’만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만 해도 몇몇의 국회의원이 이 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법률안은 눈에 띄지 않는다. 중요 사안이 못 된다는 인식에서 일 것이다. 법률은 시대를 적절히 반영해야 한다는 당위를 보면 고려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규정이 세상의 변화와 아귀가 맞아떨어지는지 차근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그 와중에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는지도 살필 가치가 있다. 더 성숙하고 완벽한 사법질서를 확보하는 진중한 여정이 될 것이다.

정승재(객원논설위원·한국인권사회복지학회 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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