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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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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4  23: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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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18)

양지는 하나 둘 자신의 정체가 맨몸뚱이로 벗겨질 빼마다 부끄러움과 두려움으로 웅크리기 시작했다. 마침내는 그에게 홀딱 잡아먹히고 말 것 같은 이상한 상상도 들었다.

그러나 모처럼 대화를 튼 서울신사를 오해한 나머지 끈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궁리를 하며 저 나름의 눈썰미로 신사의 이모저모를 관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냥 서 있으려니 다리가 아팠던 양지는 길턱의 콘크리트 바닥에 보퉁이를 내려놓고 기대섰다. 안 보는 것처럼 신사도 양지를 슬쩍 슬쩍 훔쳐보았다. 어느 순간 신사와 눈길이 딱 마주치자 신사가 슬그머니 웃어주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신사가 속내 보이는 거동을 드러냈다. 약간 어색해진 모양이 된 신사가 길 건너편에 보이는 상점을 가리키며 뜻밖의 심부름을 시켰다.

“넌 목이 안 마르냐? 저기 가서 박카스 한 병 사다줄래?”

신사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양지는 제 보퉁이로 손을 먼저 뻗었다. 보퉁이를 두고 가면 신사도 보퉁이도 다시 못 볼 거라는 위기감이 왈칵 솟았던 것이다.

낚아챌 듯 양지의 보따리를 움켜잡으며 신사가 말했다.

“돈은 내가 줄 테니까 보따리는 두고 가라니까.”

내 짐작이 맞구나. 공포를 느낀 양지는 다부지게 보퉁이를 끌어안았고 둘의 친절 아닌 친절을 눈여겨보는 옆의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듯 신사가 슬그머니 손을 거두었다.

“아입니더. 제 돈으로 사올께예.”

말을 뱉어낸 양지는 가게가 보이는 쪽으로 재빨리 걸어갔다. 곁눈으로 힐끗 돌아보니 이쪽으로 목을 늘인 채 신사가 지켜보고 있었다. 양지는 심부름 잘 하는 아이의 약속처럼 신사를 다시 한 번 돌아 본 뒤 뜀박질을 했다. 마침 전봇대와 다른 사람들에 가려서 신사가 보이지 않는 지점에 이르자 양지는 옆길로 접어들어 몸을 숨겼다.

남의 집 모퉁이에 숨어서 보니 좀 전의 그 신사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지나가는 것이 보여 양지는 더 웅크려서 납작 몸을 좁혔다. 행여 또 그 신사의 눈에 띨라 미로처럼 뚫린 길로 제 집을 찾아가는 아이처럼 부지런히 걸었다.

그 때 지나 온 큰 길 어디선가 쓰리꾼이다! 저 놈 잡아라! 하는 다급한 고함소리가 째앵한 비명으로 들려왔다. 동시에 양지는 누군가가 제 등을 탁 치는 공포감으로 무릎을 팍 접었다. 아울러서 무시무시한 적지에서 용케 빠져나온 안도감이 덮쳤다.

아아, 여기는 서울이다.

뒤통수 쳐놓고 간 빼간다는 세상. 눈 뜨고 코 베인다는 서울. 여기가 바로 그 서울, 정신 똑 바로 차려야 된다. 양지는 잠시나마 혼몽했던 머리통을 통통 치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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