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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근 교수의 慶南文壇, 그 뒤안길(426)<186>박경리 동상, 그리고 북유럽 이야기(4)
김귀현  |  k2@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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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5  23: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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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에서는 그 중심부인 원로원 광장 옆구리에 차를 세우고 헬싱키의 축약된 모습을 본다. 이 광장의 가운데엔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이 서 있다.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이 되어 제일 먼저 동상을 헐어 러시아로부터의독립을 기념하고 싶었지만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두고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로 이 동상이 존치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필자는 이 동상 곁에 있는 벤치에 앉아 북유럽 국가들도 하나 같이 침략을 받고 나라를 수세기 동안 빼앗기고 되찾고, 또 다시 뜻하지 않는 사건으로 전쟁이 생기고 수모를 겪고 또 어쩌면 기사회생하는 아픔의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그런 데도 자기 나라의 형편에서 수용할 수 밖에 없었던 종교를 갖고 있음을 신기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핀란드는 기독교 루터파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원로원 광장 동쪽 끝에 높다라이 솟아 있는 헬싱키 대성당은 루터교의 본산이었다. 성당 오른 쪽 벽에는 루터의 조각상이 새겨져 있어 유럽의 다른 교회 내부와의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밝은 녹색을 띠고 있는 산화된 구리돔과 흰색 주랑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독특한 건물, 전체적으로는 흰색 건축물이었다. 밖으로 나오면서 일행들과 사진을 적당히 찍는데 핀란드 여성인지, 아니면 여행객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지만 40대로 보이는 아담한 여성이 은은한 미소를 띤 채 고개를 숙여 목례해 오는 것이었다. 나는 정서적 교감이 되는 것 같아 핸드폰을 건네주며 한 컷 찍어달라 부탁했다. 빙긋이 웃으며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필자의 핸드폰의 초점을 잡았다. 필자에게는 이 순간 이 여성이 필자의 핀란드 이미지를 결정지워 주는 한 분 미지의 친구가 된 것이었다.

그 다음으로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주경기장으로 이동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더러 보았던 메인 스타디움이라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88올림픽을 생각하면 턱없이 규모가 작은 것으로 보였다. 전쟁 중인 데도 우리나라는 두 번째로 참가했고 소련은 공산주의의 우월함을 보여주기 위해 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했다. 이때 올림픽이 이념의 대결무대가 된 것이 특이한 기록이라면 기록일 것이다. 이때 공산권 국가들이 선수촌을 별도로 마련해 달라고 주장하여 선수촌이 두 군데로 나뉘어 있었다. 체코의 에밀 자토펙이 5000m 1만m와 마라톤을 제패한 대회로 우리나라는 장준호와 김성집이 복싱에서 동메달을 땄다.

필자는 초등 4학년 때이던가 시골로 다니던 무성영화 순회상영을 학생 단체로 보았는데 그때 그 헬싱키 올림픽 기록을 상당부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60여년이 지난 뒤 그 영화 장면을 떠올리며 메인 스타디움을 본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그래 다음과 같이 시를 썼다. ‘1952년 전시중/ 우리나라 두 번째로 참가한 헬싱키 올림픽/ 내 지리산 아래 초등 3학년때/ 무성영화로 보았었지// 오늘 그 메인 스타디움을 찾아왔다 / 60여년이 지났는데 필름이 생생 돌고 있다// 시설, 장난감 같다/ 사상 최대 육상의 신화를 연/ 파보 누르미 선수/ 청색 조각상으로 근육 불끈거리며 트랙을 돈다// 성화 최종 주자/ 그가 올림픽 해설사다// 세계의 기억은 한 마리 갈매기로 날아와/ 북구의 핀란드/ 세 글자를 쫑 쫑 쪼고 있다’(<핀란드 헬싱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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