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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플러스 <172>함안 작대산(청룡산)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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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15  09: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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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대산에는 원시림같은 솔숲이 한참동안 이어진다. 


작대산(爵隊山)은 함안군 칠원면에 소재한 산으로 해발 647m에 이른다. 태고적 천지개벽 시 온 세상이 물에 잠겼으나 이 산은 작대기꽂을 만큼 남았다는데서 유래했다 한다. 그런데 정작 한자는 벼슬 ‘작(爵)’이다. 인근지역 조롱산은 조롱박을 엎어놓은 것만큼만 남았고, 와룡산 새섬바위는 새가 앉을 만큼만 남아서 그렇게 부른다는데 이는 흔한 통설이다.

우리나라 산에는 이와 비슷한 이유로 바다와 관련된 지명이 산에 많다. 미역이 붙어 있었다는 미역바위가 그렇고 배가 들락거렸다는 배느러미와 배바위도 이런 유형이다. 천지개벽을 했으니 산이 바다요, 바다가 산이라는 얘기인데, 그래서 정말 천지개벽이 있었을까 하는 무료한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우리들 마음에 ‘세상이 만들어질 때, 원래 그랬을 것’이라는 무한상상이 이런 지명들을 만들어내지 않았나하는 생각이다.

이 산 인근 무기리 산정동에 용이 승천했다는 용지골은 작대산의 다른 이름 ‘청룡산’이라는 이름을 낳게 한 계곡이다.

원래는 작대산이 아닌 청룡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앞 시기의 지리지와 고지도에는 ‘청룡산’이라고 기재하고 있다.

육산이라 걷기 편하지만 초반에 서봉까지 오르막이어서 힘이 든다. 정상에서 완만한 내림 길에는 양목이, 양미재 등이 있어 지루하지 않게 하산할 수 있다.

▲등산로;함안군 칠원면 무기동회관→마을안길→등산로 입간판 갈림길→임도 200m→무덤 2기→작대산(청룡산)트레킹 갈림길→서봉→작대산 정상→헬기장→양목이→양미재→산정마을. 6.2㎞, 점심포함 5시간 소요.

 
   
▲ 정상에서 동쪽으로 바라본 풍경, 감계 아파트단지 주남저수지 등이 보인다.


▲오전 9시, 산행은 칠원면 무기리 무기동회관에서 시작한다. 마을 입구에는 수 백년 수령의 정자나무가 한그루 서 있고 2층짜리 마을회관이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고고한 자태의 연꽃이 자라는 ‘무기연당(舞沂蓮塘)’이라는 연못이 있다. 주씨 고택 앞마당 정원에 늙은 소나무와 함께 어울려 최상의 한국정원을 자랑한다.

시멘트 골목길을 따라 마을 뒤로 간다. 대나무 밭이 있는 지점이 등산로 초입인 만큼 그쪽 방향으로 가면서 길을 찾으면 된다. 청보리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는 마을 들녘, 바람에 일렁이는 모양새가 바닷가에 밀려오는 파도 같다.

주씨 성의 문패가 있는 집 앞을 가로질러 산으로 향한다. 등산안내도, 신체 활동량 등을 가늠해 체크할 수 있는 입간판이 있는 곳이 등산로 초입이다.

좌측 시멘트길을 따라 200m정도 올라가면 오른쪽 산으로 가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 무덤 대형 상석(床石)에 통정대부 품계를 기록해 놓았다.


오전 9시 20분, 첫 무덤과 두번째 무덤이 나온다. 두번째 무덤은 규모가 크다. 주변에 석물없이 대형 상석(床石)만이 놓여있다. 크기나 규모로 미뤄 옛날 이 마을에서 이름을 떨친 명망가의 묘지일 거라고 추측된다. 조선 문관 정3품 당상관의 품계인 ‘통정대부(通政大夫)’라는 글씨만 읽을 수 있다. 이 벼슬은 통훈대부(通訓大夫)의 위이다.

처음에는 솔숲이, 조금더 오르면 떡갈나무와 참나무가 주류를 이룬다. 쏟아지는 강한 햇살이 초록의 이파리를 노란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등산로 옆 소나무가지 숲 은밀한 곳에 둥지를 틀고 알을 품고 있는 때까치를 만났다. 자리를 잘못 잡아 사람의 접근이 피곤하기도 하련만 그래도 한줌의 숨도 쉬지 못하고 입을 벌린 채 죽은 체 하는 건지, 나뭇가지 흉내를 내는 건지 옴짝달싹하지 않고 하늘을 보고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방해가 될까봐 조심스럽게 뒷걸음으로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산허리를 휘돌아가는 트레킹 길도 나온다. 그러나 선행자들은 길이 선명치 않아 애를 먹는 구간이라고 그 코스는 권하지 않았다. 이왕 길을 낸 만큼 당국에서는 재정비해 이용이 가능토록 하든지 폐쇄하든지 조치가 필요해보였다.

하늘엔 담쟁이넝쿨이 소나무를 타고 올라 마치 초록의 옷을 입은 것처럼 싱그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땅에는 바닥을 기는 넝쿨식물 복분자가 붉은 열매를 키우고 있었다. 하나 둘씩 보이던 복분자 열매는 재배하는 것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빽빽하게 자라고 있었다. 줄기를 따라 주렁주렁 달고 있는 아름다운 모양이 마치 결혼식장에서 처녀들이 던지는 사탕부케같다.

 
   
▲ 자연산 복분자


오전 10시 17분, 갈림길이 나타난다. 서봉으로 오르는 길과 우회해 작대산으로 곧바로 가는 길이다. 거기서 50여m 정도 오르면 서봉에 닿는다. 주변에 키큰 나무들이 자라 조망이 별로 없는 것이 흠이다.

작대산으로 가려면 서봉을 내려선 다음 다시 올라야 한다. 내려서는 길에서 오른쪽 산 아래 양미재 방향으로 바라보면 고속도로 옆에 큰 채석장이 보인다. S산업인데 남해고속도로 옆 창원 1터널이 있는 곳이다. 산허리가 곰팡이가 핀 것처럼 큰 상처가 났다.

오전 11시, 작대산 정상, 갑자기 하늘의 반이 열린다. 동쪽 넓은 들과 호수, 불어오는 바람, 푸른창공이 가슴에 안긴다.

이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풍경이다. 가깝게는 창원 감계도시개발구역 대단위아파트단지와 그 뒤로 동읍 주남저수지, 오른쪽에 동판저수지 천주산 정병산이다.

정상의 넓은 헬기장 한켠에 정자 같은 쉼터와 방향표시가 잘 돼 있는 정상석이 위치해 있다. 작대산이 아닌 ‘청룡산’이 새겨져 있다.

점심을 겸한 휴식 후 낮 12시 30분께 정상을 떠나 4.7㎞ 떨어져 있는 천주산 방향으로 발길을 잡았다. 내림길 50분 만에 양목이재에 닿고 오후 1시 40분께 양미재를 지난다.

 
   
▲ 구고사 부도


골짜기 절골에는 구고사(九皐寺)가 위치하고 있다. 현재 절은 최근에 지은 것이다. 예전부터 절이 있었던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흔적은 경남도문화재자료 제493호 부도, 칠원면 사무소로 옮겨 두었던 것을 1998년 다시 구고사 입구 구릉 텃밭으로 이전했다. 팔각형 기단은 각 모서리마다 우주가 모각되어 있으나 마모로 흔적이 불분명하다.

조선후기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석종형 부도의 유형과는 달라 부도의 양식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하고 한다. 이 외 절의 한쪽에 고려시대 것으로 보이는 작은 석탑이 있다.

오후 2시 30분, 산정동으로 하산 후 무기마을로 회귀했다.

이 마을 주씨고가는 1700년대에 축조한 건물로 1985년 1월 경남도민속자료 제10호로 지정됐다. 주재성(周宰成) 이래 주씨 종택이다. 고택 내에는 무기연당이라는 원형을 잘 간직한 연못이 있다. 고택·연못의 주인 주재성은 1728년 영조 4년 이인좌의 난때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워 양무원종에 오른다. 훗날 벼슬을 마다하고 낙향해 집을 짓고 연못을 만들었다. 중앙에는 석가산(石假山), 가장자리에는 약 250년 수령의 노송이 멋과 풍류를 더한다. 그는 수시로 맑은 연못에 자신을 비쳐보며 수신제가했다. 그의 호를 본떠 국담이라고도 한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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