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선도와 보길도
송영식(전 진주시토지정보과장)
윤선도와 보길도
송영식(전 진주시토지정보과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06.18 08: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영식

보길도 격자봉(433m)정상에서 보면 가마솥 같은 둥그런 바위가 있다. 이 바위가 사람에 비하면 정수리, 즉 머리 중앙점이다. 여기서 직선방향 아래쪽으로 가운데 용맥(龍脈)이 흘러가다 하단부에서 기(氣)가 멈춘 곳(穴)에 낙서제(樂書齊)가 있다. 정말 기막힌 풍수지리의 대가 고산은 이곳에 낙점했다.

여기가 산림집, 즉 안채이다. 고산은 벼슬 8년, 20년 귀양살이, 19년 은둔생활을 했으며 85세에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뒤로한 채 이곳 낙서제에서 영면에 들었다. 또 산 9부능선에 고산이 평소 차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던 동천석실이 있다. 이곳에서 부용동을 바라보면 만조백관이 임금을 향해 절을 하며 받들어 모시는 형국이다. 한칸 건물로 주위는 온통 바위와 돌 사이 위에 집을 지었다. 이곳은 풍수에서 석중혈(石中穴)로 엄청난 에너지, 즉 기(氣)가 올라오는 자리이다. 따라서 고산이 85세까지 장수한 것은 명당의 기를 받고 유유자적함으로써 장수했다고 판단된다. 당시 평균수명이 약40세였다고 하니 현재로 계산하면 150세를 살았다고 생각된다.

낙서제 이곳이 연꽃이 핀 중앙, 그래서 부용동(芙蓉洞)이라 지명이 지어졌다. 부용동 들머리엔 고산이 평소 술잔을 띄우고 시조와 거문고 어부사시사를 노래하던 세연정(洗然亭)이 있다. 자연적인 시냇물을 돌로 둑을 막아 인공연못을 만든 후 연못에 인공섬을 만들고 그위에 정자를 지어 주변경관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세연정이다. 고산은 세연정으로 가는 길에 소실은 주안상과 안주를 갖췄고 자제와 기생들은 고산의 수복강녕을 비는 가운데 배를 띄우고 거문고 연주에 부른 노래가 어부사시사이다. 이곳에서 세상을 등지고 벼슬도 버리고 낙향해 술 한잔에 시 한수로 세월을 보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당시 고전에 의하면 고산은 농토가 약 40만평 노비가 610명, 기생과 부인이 30여 명이라고 전해진다. 보길도는 고산의 왕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그 당시는 권력과 부의 상징이라 흠결이 아니라 사료된다. 조선의 천재 자산어보를 저술한 정약전, 목민심서 저자 다산 정약용은 고산의 5대손이다. 즉 두 사람의 어머니가 해남윤씨이다. 다산이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외가에서 그 뒷바라지를 했다고 전해지며 윤관 전 대법원장은 고산의 12대손이다. 옛날 속담에 왕대 끝에 왕대가 태어난다는 말이 생각난다.

 

송영식(전 진주시토지정보과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