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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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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20  00: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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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21)

아, 드디어 발붙일 곳을 마련했구나.

마음이 턱 놓인 양지는 부지런히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을 했다. 장사가 끝나고 뒷정리를 할 때는 남의집살이 때 몸에 밴대로 시키지 않은 바닥 청소까지 구석구석 스스로 알아서 했다.

하루 종일 일에 지친 몸은 솜처럼 무거워져 방바닥에 등을 대기만 하면 시체처럼 축 늘어졌다. 그러나 단잠을 푹 자고 나면 개운 해진 김에 일찍 눈이 떠져 다행이었다. 양지는 주인보다 먼저 일어나서 손님 치를 하루 일을 준비해놓곤 했다. 아주머니로부터는 네가 있어서 내가 훨씬 수월하다는 칭찬도 받았다. 객지살이에 익숙해질 때까지 눌러 있기 괜찮은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거였다.

그렇게 보름 쯤 지낸 어느 날 밤이었다.

안으로 걸쇠가 꽂혀있는 낡은 방문이 찌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은밀하게 계속되는 기척에 양지는 잠을 깼다. 뒤이어 주방장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야, 꼬마야 문 좀 열어봐. 내 물건 가져갈게 있으니까.”

제법 익숙해진 사이가 됐지만 이건 아니다. 지금은 늦은 밤 아닌가. 이 시간에 무슨 물건을. 버럭 긴장한 양지는 잠든 척 숨을 죽였다. 더 부드럽고 은근하게 만든 주방장의 목소리가 연이어졌다. 그러나 양지가 아무 소리도 않자 주방장은 문틈으로 숟가락을 밀어 넣어 걸쇠 열기를 시도했다. 억지로 문이 열리는 순간 어떤 낭패스러운 일이 생길지 모른다.

양지는 그제야 깊은 잠에서 깬 듯 볼멘소리를 냈다.

“아저씨, 뭔데 말만 하이소. 찾아드릴 텐께.”

“야, 목소리 낮춰. 잠깐이면 되니까 문부터 따라고.”

큰 목소리를 탓하는 바깥의 분위기에 양지의 뇌리 속은 얼른 나는 네 엄마다 어웅, 해와 달이 된 남매를 연상했다. 구석 안에 있던 보따리를 출입문 옆으로 가져다 놓은 양지가 걸쇠를 풀자마자 주방장이 밀려들어왔다. 역한 술 냄새를 풍기며 주방장이 히죽 웃어보였다.

“그새 자냐?”

“뭔 물건인데 어서 갖고 가이소.”

물건을 같이 찾아줄 듯이 양지가 채근했지만 아랑곳없이 주방장은 무너져 앉아버렸다. 불룩불룩 살찐 배가 맞닿을 듯이 가까운 거리였다.

“나도 그냥 자기 심심하던 참이라 같이 놀아 줄려고 왔지. 너 일하는 것 보니까 제법 쓸 만하더라. 내가 독립하면 우리 같이 안 해볼래? 우리 누님 봤지? 어찌나 잔소리를 하는지 곧 따로나갈 작정이거든.”

이런 걸 수작이라는 건가. 양지는 나름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긴장했다. 이럴 때 무른 대응을 해서 무슨 사단이 나면 또 억울한 누명만 쓰게 되리라. 남자 꼭지란 늙으나 젊으나 맛있는 고기나 과일처럼 여자를 탐하게 생겨 먹었다고들 한다.

주방장은 또 히죽 웃으며 양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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