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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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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6.20  23:3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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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22)

먹이를 덥석 물고 싶은 살찐 산돼지 표정인데 쉭쉭 숨을 내쉴 때마다 불룩한 배가 오르락내리락 우스꽝스럽다. 그 이상한 모습에 용기를 얻은 양지는 순간 기지를 발휘했다.

“아저씨가 같이 놀자면 놀아 드릴께요. 그런데 아저씨를 보니까 아저씨가 낮에 만든 그 요리가 먹고 싶어요.”

“그게 뭔데? 요리를 한두 가지 만든 것도 아니고.”

“돼지고기를 썰어 넣고 만든 튀김인가 뭐 그거.”

“아휴 요런 촌것하고는, 그건 탕수육이야. 그게 그렇게 먹고 싶어?”

“예, 이때까지 먹어본 요리 중에 제일 맛있었어예.”

“허 그랬냐?”

“어서 만들어 주이소 예.”

응석부리듯 밀어내는 양지의 두 다리를 주방장의 억센 팔뚝이 휘감았다.

“너 보기보다 참 단단하다?”

중얼거리며 주방장은 뭉그적뭉그적 엉덩이를 밀고 나간다. 양지는 소름 낀 팔뚝을 문지르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시치미 떼기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물음을 달았다.

“얼마나 기다리면 돼요?”

요리에 대한 기대를 나타내는 듯한 양지의 말에 주방장은 고기를 꺼내면서 대꾸를 했다.

“얼마 안 걸리니까 기다려.”

덜거덕거리는 주방 기기 속에 섞여 흥얼거리는 사내의 콧노래가 들렸다. 주방장이 영계 꾈 탕수육을 만드는 데 정신을 판 사이 양지는 살그머니 그 곳을 빠져나왔다. 곧 따라 나온 사내의 거센 손길이 목덜미를 낚아 챌 것만 같아 무작정 빨리 앞을 향해 뛰었다. 달리는 차량들도 양지더러 어서 먼 곳으로 도망가라고 같이 뛰어 주는 듯이 휙휙 속도를 낸다. 꽤 먼 거리까지 도망친 양지는 몰아쉬던 가쁜 숨을 토해내며 달리기를 멈추었다. 그러나 위기는 모면했지만 또 어디로 가야하나 앞길이 막막했다.

하지만 자신을 내려놓고 적응하면 어디든 길은 만들어진다. 양지는 사람이 없는 빈 공간인 공중변소로 들어가 들고 온 보따리를 내려놓고 숨을 돌렸다. 불결한 공중변소의 변기에 쭈그리고 앉아 용변에 찌든 냄새만 견디면 하룻밤은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아늑함이 생겼다. 그러나 잠들만 하면 드나드는 술 취한 사람들의 기척 때문에 몇 번이나 깨어나 불안한 심장을 쓸어내려야했다. 그날 밤 양지는 죽은 성남언니를 생각하며 한 없이 울었다.

‘니 공부는 내가 시킬긴깨, 너는 언니만 믿고 공부만 해라. 머리가 좋고 똑똑한 사람은 꼭 큰일을 하게 명령받고 태어났더라. 너도 꼭 훌륭한 사람이 될 거다. 앞으로는 여자들이 큰소리치는 세상이 온단다. 그런 여자가 될라카모 많이 배워야 된다. 너는 야무지고 똑똑한께 꼭 그런 사람이 될 끼다.’

그러나 지금 죽은 언니의 약속은 뜨거운 눈물 위로 덧없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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