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 우리시대의 노년
황숙자(시인)
[경일칼럼] 우리시대의 노년
황숙자(시인)
  • 경남일보
  • 승인 2017.06.2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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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 한켠 살구 파는 할머니를 만났다. 노르스름 잘 익은 살구는 할아버지와의 따순 저녁 밥상에 오를 생선으로 손님을 기다리는 셈이다. 기억 속 옛집 마당가에는 장대만큼 높은 살구나무가 있었다.

살구나무집에는 할아버지·할머니와 자손들이 들썩거리며 살았다. 집안의 어른은 긴 담뱃대를 탕탕 두드리시는 할아버지였다. 하지만 이제는 호랑이 담배 필 적 얘기가 되어 버렸다.

삶에 문제가 생기면 예전에는 노인을 찾아가 지혜를 구했다. 살아온 연륜은 그만큼 세상에 대한 이치와 통찰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에 대한 묵직한 무게감이 때로는 제대로 존중받지 못하여 자존감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질환과 가난과 소외에 의한 노인 학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노화와 질병과 죽음 앞에서 애써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 무겁게 다가온다.

노인 학대는 정서적 학대가 많은 반면 신체적 학대도 무시할 수 없다. 학대 행위자는 아들, 배우자, 딸, 노인복지시설의 종사자 순이라니 씁쓸하다.

그 중 90%는 가정에서 일어나는데 부모가 고령이 되어도 경제적 자립이 되지 않아 독립하지 못하고 함께 사는 아들이 이제는 부모가 병이 들자 간병의 부담을 느낀 나머지 상습 학대하여 사망케 한 참담한 사건이 있었다.

노인 학대로 사법기관에서 판정, 처벌받는 건수가 한 해 4200건이 넘는다고 한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독거노인도 다섯 명 중 한 명. 여력이 없고 귀찮다는 이유로 식사를 제때에 하지 않고 쓰레기를 제대로 치우지 못해 집안에 쌓아두는 불결한 환경은 자기방임 학대에 해당한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가족은 가장 따뜻한 존재가 되는 동시에 가장 큰 상처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전환되는 셈이다.

사랑과 화목이 넘쳐 흘러야 할 자리에 학대와 증오뿐인 노년은 불행한 일이다. 누구나 늙는 것은 분명한 결말. 장수는 축복이기는 하지만 노년의 평화가 충분히 보장된다는 것은 불분명한 미래 같다.

고령화가 재앙처럼 학대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데 자식과 배우자에게 거부당하는 노년, 이제 어른은 없고 노인만 있는 사회. 우리에게는 과연 어떤 노후가 기다리고 있을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한국노인의 빈곤율은 최고 수준이다.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 책임져주어야 할 일. 노인복지가 더욱 확립된다면 학대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질병과 가난으로 오래 산다는 것은 사회와 자녀에게 짐을 지우는 일이 되지만, 그래도 학대는 안되는 일. 어머니니까, 혹은 아버지니까, 알지요?
 
황숙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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