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24)
“그 동안 어디서 지냈는데, 친척 집?”
“그런 거는 더 묻지 마이소.”
청년의 자상한 성품에 자신을 얻는 양지는 제 마음속에 든 생각을 구김살 없이 드러냈다.
“하긴 과거보다 현재가 더 중요하지.”
잠시 뜸을 들이던 청년이 걸음을 떼며 돌아보았다.
“배도 고프지? 따라와.”
양지는 짐을 꽉 끌어안고 쾌재어린 걸음으로 쫄랑쫄랑 청년의 뒤를 따랐다.
큰 길을 벗어나자 작은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좁은 골목으로 청년이 들어섰다.
“비싼 건 못 사주고, 나랑 같이 밥 먹자.”
김치찌개, 된장찌개 냄새에 푹 절은 느슨한 목문을 밀고 들어서자 행주로 탁자를 닦던 안주인이 반가운 얼굴로 맞이했다.
“아이고 오늘은 좀 늦었네.”
웬 계집아이를? 식당주인의 빠른 눈길이 양지를 함께 훑는다.
“예, 시험은 코앞인데 영 진도가 안 나가서 골칩니다.”
“그래도 쉬엄쉬엄 해.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건강 먼저 챙겨야지.”
“옛 알겠습니다. 마마. 난 된장찌개 먹을 건데 넌 뭘 먹을래? 너 먹고 싶은 걸 골라.”
“아무꺼나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안주인이 껴들었다.
“누군데? 고향에서 온 학생 친척인가?”
“예, 뭐 그렇게 됐습니다. 된장찌개로 둘 주세요. 밥은 한 공기 더 주시고요.”
음식이 나올 동안 청년은 내내 책을 펼쳐놓고 들여다본다. 밑줄 친 부분도 보이고 깨알 같은 글씨가 콩밭고랑에 심은 열무처럼 빽빽하게 들어찬 곳도 있다.
“자, 먹고 더 먹어라. 배도 많이 고플 텐데.”
언제 저도 굶주려 본 사람처럼 청년은 밥상이 앞에 차려지자 덤으로 나온 밥그릇을 양지 앞으로 놓아주며 말했다. 양지가 숟가락을 들자 청년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눈은 여전히 책에 박아놓은 채 용케도 이것저것 잘 떠먹는다.
후딱 밥을 먹어 치운 청년이 바쁘게 일어서며 주인에게 부탁했다.
“저는 제 방에 올라가서 옷 갈아입고 나갈 거니까, 얘 좀 여기서 쉬어가게 해주세요.”
“그래요 도련님, 어찌 저리 자상하시기도 할까.”
밥집 아주머니는 공부 열심히 하는 자기 자식이라도 어르는 듯 다정한 눈으로 청년을 보고 웃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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