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 저성장의 고통, 일본에서 배우자
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경일시론] 저성장의 고통, 일본에서 배우자
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 경남일보
  • 승인 2017.06.26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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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980년대 후반부터 경기침체를 겪기 시작했다. 엔화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수출이 타격을 입었고, 내수시장은 1990년대 초 부동산 및 주식 버블 붕괴로 침체국면에 들어섰다. 일본 경제가 장기 저성장에 돌입한 시기는 인구절벽이 시작된 1995년부터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늘어나던 일본의 생산 가능 인구는 1995년을 기점으로 줄기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일본 경제는 본격적인 장기 저성장시대를 맞았다.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그 나라의 생산 활동이 위축된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핵심 소비 가능 인구라는 점에 있다. 생산뿐만 아니라 내수 소비도 함께 위축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생산 가능 인구가 줄기 시작한 시점부터 내수 소비의 큰 축을 이루는 백화점과 할인점은 물론 젊은 층이 주로 이용하는 동네 술집과 노래방, 옷 가게, 식당, 미용실, 세탁소 등의 매출이 시차를 두고 줄기 시작했다. 결국 이런 동네 가게의 쇠퇴와 도산으로 일본 경제는 만성병 환자처럼 서서히 병들어 갔다.

생산 가능 인구 감소로 시작된 소비 절벽은 일본 경제를 악순환에 빠뜨렸다. 가계의 소비 감소로 매출에 큰 타격을 입은 기업은 투자를 줄이는 동시에 인력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까지 단행했다. 그러자 일본 가계는 소비를 더욱 줄였다. 가계에서 시작된 불황이 기업 불황을 유발하고, 기업의 불황이 다시 가계 불황을 유발하는 복합적인 불황에 빠진 것이다.

경제의 구조적 악순환은 사회, 정치 불안으로 이어졌다. 노후 준비가 안된 노인이 거리의 노숙자가 됐고, 조기 퇴직 후 자영업에 나선 샐러리맨들이 파산해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이들은 취업 빙하기를 겪고, 어렵게 취업을 하더라도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한때 전 국민이 중산층이라고 했던 일본 사회는 양극화됐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됐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살기 어려워졌다. 정치인들은 국민의 불만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일시적으로 국민의 환심을 사려는 포퓰리즘에 빠졌다. 세계 최고의 재정 건전 국가였던 일본의 국가재정은 20년 만에 선진국 가운데 최악 수준으로 전락했다.

우리나라는 20여년의 시차를 두고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버블 붕괴로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악화됐고, 최근에는 인구절벽을 맞고 있다. 생산 가능 인구도 줄기 시작했다. 만약 정부가 특단의 조처를 하지 않으면 일본과 같은 소비 절벽을 맞는 것도 시간문제이다.

우리나라 상황은 일본보다 더 나쁘다. 경제규모도 1990년대 일본보다 못하고, 국민소득도 일본보다 적다. 국가재정 상황도 기업경쟁력도 일본보다 못하다. 고령화 속도는 인구절벽을 겪던 당시의 일본보다 더 빠르다. 노인층의 빈곤율은 50% 가까운 수준이며, 사회 양극화도 일본보다 심하다. 게다가 장기 저성장의 직격탄을 맞게 될 가게가 골목 곳곳에 있다. 자영업 종사자가 600만 명을 넘으며, 이들이 전체 사업체 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6%에 달한다.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 장기 저성장의 고통은 오래도록 우리 경제를 짓누를 것이다. 위기는 모르고 당할 때 더 큰 위기가 된다. 사전에 알고 대비하면 피할 수 있다. 하루 빨리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김진석(객원논설위원·경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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