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48>계룡산 남매탑의 전설
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48>계룡산 남매탑의 전설
  • 경남일보
  • 승인 2017.07.0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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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매탑 앞 거북 모양의 돌의자에 쉬고 있는 모습.

◇이룰 수 없는 꿈이 만든 남매탑 전설

이룰 수 없는 백성들의 꿈이 모여 전설이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시절 읽은 이상보 선생님의 수필 ‘갑사로 가는 길’은 40년 세월이 지났는데도 필자의 뇌리에 남아있다. 다른 내용은 사라지고 남매탑 전설에 대한 사연은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오랜 세월 가슴 속에 남아있는 그 남매탑 전설이 필자로 하여금 계룡산 산행을 결심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명품산악회인 ‘더조은사람들’ 회원들과 함께 남매탑 전설을 찾아 계룡산으로 떠났다.

동학사 주차장-큰배재-남매탑-삼불봉-자연성릉-관음봉-은선폭포-동학사-주차장으로 순환하는 코스를 선택했다. 워낙 유명한 산행지다 보니 출발부터 탐방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동학사 바로 아래서 오른쪽으로 큰배재와 남매탑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어 얼마쯤 걸어가자, 숲속 골짜기에서 징소리가 들려왔다. 예로부터 무속인들의 기도처, 도인들의 수행지로 널리 알려진 계룡산, 산과 물이 태극 모양처럼 펼쳐져 있다 하여 풍수지리적으로 매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져 왔다. 산의 형상이 지닌 위엄과 신비가 영험함을 기대케 하고 외경심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숨이 찰 정도로 걸었을 무렵,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남매탑이 나타났다.

‘때는 거금 천사백여 년 전 신라 선덕여왕 원년, 상원대사가 이곳에 와서 움막을 치고 기거하며 수도할 때다. 비가 쏟아지고 뇌성벽력이 천지를 요동하는 어느 날 밤에 큰 범 한 마리가 움집 앞에 나타나서 아가리를 벌렸다. 대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눈을 감은 채 염불에만 전심하는데 범은 가까이 다가오며 신음하는 것이었다. 대사가 눈을 뜨고 목 안을 보니 인골(人骨)이 걸려 있었으므로 뽑아주자 범은 사라졌다. 그리고 여러 날이 지난 뒤, 함박눈이 내려 사방을 분간할 수조차 없는데, 전날의 범이 한 처녀를 물어다 놓고 가 버렸다. 대사는 정성을 다해 기절한 처녀를 회생시키니 바로 경상도 상주읍에 사는 김화공(金化公)의 따님이었다. 한겨울이라 눈을 헤치고 나갈 길이 없어 이듬해 봄까지 기다렸다가 그 처자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전후사를 말하고 스님은 되돌아오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김 처녀는 대사의 불심에 감화를 받은 바요, 한없이 청정한 도덕과 온후한 성품에 연모의 정까지 생겼는지라, 그대로 떠나보낼 수 없다 하여 부부의 예를 갖추어 달라고 애원했다. 김화공도 또한 호환에서 딸을 구원해 준 스님의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음을 안타까워하던 차, 의논한 끝에 처녀는 대사와 의남매의 인연을 맺어 함께 계룡산으로 돌아와 김화공의 정재(淨財)로 청량사를 새로 짓고 평생토록 남매의 정으로 지내며 불도에 힘쓰다가 함께 서방 정토로 떠났다. 두 사람이 입적한 뒤에 사리탑으로 세운 것이 남매탑이다.’

 
▲ 동학사 가는 길목에 있는 생각하는 여인상


◇가파른 오르막길의 고행이 곧 수행이다

어쩌면 이 남매탑 전설은 김화공 딸의 간절한 소망이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전국 어디에나 널려있는 전설, 그 전설들은 백성들의 염원에 의해 창작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을 소망 속에서 이루어지게 만든 백성들의 지혜로움, 이곳 계룡산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남매탑 바로 옆 널찍한 공터에는 조각을 하다 만 미완성의 돌거북 12개가 있었다. 오래 전에 오씨 성을 가진 사람이 청량사를 복원키 위해 마련한 주춧돌이라고 한다. 지금, 이 돌거북은 오가는 등산객들이 쉬었다가는 의자 구실을 하고 있다. 거북 모양의 돌의자에 앉아, 적선을 베푼 분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다정하게 선 두 탑에 얽힌 애틋하면서도 아름다운 오누이의 사랑을 떠올려 보았다.

삼불봉 고개에서 갑사로 가는 길 대신 관음봉 쪽을 선택했다. 삼불봉에서 자연성릉, 그리고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능선의 모양이 흡사 닭벼슬을 쓴 용의 형상과 같아서 산 이름을 계룡산(鷄龍山)이라고 불렀다는데, 가파른 능선길은 그야말로 고행 길이었다. 수직에 가까운 철계단으로 이어진 관음봉을 오르는 길은 고행 중의 고행이었다. 입에서 화근내가 났다.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닿은 관음봉, 그저 무념무상이다. 아, 이 고행이 바로 수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온 바위 능선은 고통이 아니라 이제 아름다운 능선길이 되어 하나의 풍경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인생도 그렇다. 지금의 고행은 머지않아 행복을 낳는 거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음봉에서 먹는 도시락밥과 물 한 모금은 관음 세계에서 부처님께서 드시는 마지와 비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점심을 먹은 것이 아니라 행복을 먹은 셈이다.

관음봉에서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오자, 은선폭포를 만날 수 있었다. 가뭄이 길어서 그런지 물줄기는 흔적만 남아있고, 폭포는 허연 바위 속살만 내보이고 있었다. 물이 흐르지 않는 계곡을 따라서 평지에 닿자, 계룡산 팔경 선정 기념 조형물을 볼 수 있었다. 생각하는 여인상과 계룡의 얼굴(鳥石의 少女),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세계를 꿈꾸는 상징물을 보면서 자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상기하며 걸어 왔다.

 
▲ 슬프고 애달픈 전설이 서린 남매탑.


◇다리 하나 건너에 있는 피안의 세계

동학사를 지나자 소박한 피안교(彼岸橋)가 탐방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피안교란 온갖 번뇌에 휩싸여 생사윤회하는 인간 세상에서 아무런 고통과 근심이 없는 열반의 세계로 건너는 다리를 뜻한다. 보통 사람들이 절을 찾을 때, 세속의 잡된 마음을 청정하게 씻어버리고 정갈한 마음으로 절에 닿기 위해 건너는 다리가 피안교인데, 필자는 관음봉에서 동학사로 내려왔기 때문에 역행을 한 것이다. 그러니 산행을 통해 수행한 청정한 마음이 피안교를 거꾸로 건너면서 다시 속된 마음을 안고 차안(此岸)으로 되돌아오는 것 같아 마음 한켠이 무거워져 왔다. 다리 하나를 두고 나누어지는 피안과 차안, 남매탑 전설처럼 사람의 소망이 만들어낸 조화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안과 차안의 세계가 마음에서 생겨나듯, 행복을 짓고 불행을 지우는 일도 마음의 일이라는 생각을 하니 걸음걸음이 가벼워진다.

/박종현(시인·경남과기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관음봉 가는 고행의 철계단.


산능선이 닭벼슬 형상인 계룡산.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움을 상징하는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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