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3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34)
  • 경남일보
  • 승인 2017.07.0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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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34)

호남이가 하는 난폭한 동작에다 몸을 맡긴 잠수부는 미안한 표정을 감추지도 않고 옆 사람에게 담배를 청해서 피워 물었다. 고종오빠와 양지가 다가가자 잠수부는 미안한 듯 변명을 한다.

“며칠 전 봄비가 좀 많이 왔나요. 얼음 풀린 물이라 유속이 더 빠른 법이거든요.”

“그렇담 더 밑으로 떠내려갔단 말인가요?”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럴 공산이 크지요. 아줌마, 진정 하이소. 내가 일부러 안 찾는 것도 아니고 참말로 너무 하네 예.”

무작정 흔들고 매달리는 호남의 완력에 부대끼던 잠수부가 비틀비틀 일어나 겨우 중심을 잡지만 이내 다시 뒹굴어진다. 참다못한 잠수부가 쓰러진 자리에서 볼멘 항변을 한다.

이미 와 있던 아버지가 호남을 나무랐다.

“그만 그쳐라, 운다꼬 죽은 자슥이 살아올까. 이럴 줄 몰랐더나. 갈데없이 혼자 노는 어린 게 얼음 녹은 진창이 어떤지 알고 들어갔을까. 사람들 보기 남세스럽지도 않나?”

조신스럽지 못하다고 호남을 늘 못 마땅해 하던 아버지의 목청에는 거 보란 듯이 호통이 실렸다. 홧김에 소리를 친 것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된 것을 안 아버지는 곧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몸을 돌리더니 넋 나간 사람처럼 골똘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뿜어내는 푸념이 연기에 섞여 산발하며 아버지의 얼굴을 감돌았다.

“지 년이 뭘 안다고, 돈이 먼저가 자식이 먼저가. 몰라도 너무 몰랐제. 자슥이 바로 종자 아이가. 종자가 없이모 뭔 낙으로 살끼고. 씩뚝깎뚝 아무케나 산다꼬 다 살아지는 게 아이다. 아이고 내 팔자야, 끝이 와 이리 되꼬. 앞으로 열불 나서 저 자식들 꼬라지는 또 우찌 볼꼬.”

안경을 벗어들고 눈자위를 훔치는 아버지의 주먹이 사뭇 떨리고 있다. 양지는 정신을 바짝 차렸다. 나마저 감정에 흔들려서 정신을 잃고 말면 저 진창에 박힌 신짝 같은 호남이나 아버지는 어쩔 것인가. 아무리 울부짖어도 주영을 안고 간 물은 시치미 떼고 제 갈 길로만 술술 재촉하며 흐를 뿐이다.

“아아, 내가 잘못했어. 그때 언니 말 들었시모 이런 일은 없었을 걸. 우리 주영이는 내가 죽있다. 언니야 나는 인자 우짜모 좋노. 우리 주영이 불쌍해서 우짜꼬. 엄마 언제 나 델로 올꺼냐꼬 날마다 기다릿을 낀데.”

벽처럼 무너져 온 호남에게 쓸려 양지는 진창으로 나뒹굴었다.

“언니 니가 우겨서라도 주영이 좀 데꼬 오지. 우리 주영이, 저 물 차겁은 데서 못 나오고 있다. 누가 우리 주영이 좀 찾아주소오.”

서릿발이 녹아서 풀린 진창으로 곤두박질해 가면서 호남은 떼굴떼굴 굴렀다. 열리지 않는 대문처럼 굳어있는 사람들을 이 사람 저 사람 잡고 흔들며 마구 오열을 쏟아놓는다. 얼마나 울었는지 쉰 음성이 나무 몽둥이처럼 툭툭 부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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