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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착기 하나로 8개 기업 일군 억척 사업가[경제人터뷰]박명식 삼삼기업 회장
강진성  |  news24@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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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06  22:4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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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삼기업 박명식(69)회장이 삼삼CC에 있는 집무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박 회장은 진주에서 맨손으로 시작해 건설업 등 8개 업체를 거느릴만큼 자수성가한 향토 기업가다. 그중 삼삼CC는 나무하나 돌하나까지 그의 흔적이 남아 있어 가장 애착을 가진다. 박 회장은 지금도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골프장에서 풀을 뽑거나 조경수 가지치기를 직접 하고 있다. 강진성기자

 

햇볕에 그을린 까만 피부. 수수한 옷차림. 명함을 보여주기 전에는 마치 옆집 할아버지 같은 분위기다. 삼삼기업 박명식(69) 회장은 진주에서 자수성가한 기업가다. 건설업계에서 ‘삼삼’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알짜배기 회사만 8개를 거느리고 있다.

일이 몸에 베인 그는 지금도 새벽 1시 취침과 오전 5시 기상을 지키고 있다. 매일 기상과 함께 삼삼CC(골프장)로 나와 풀을 뽑고 조경수 가지 치는 일을 직접 할 정도로 몸이 쉬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박 회장은 여러 회사의 대표뿐만 아니라 봉사단체 회장과 시의원 등을 지냈지만 언론에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 특히 인터뷰는 한사코 거절하기로 유명하다. 이날 인터뷰는 여러 경로를 통해 어렵게 설득해 성사됐다.

그는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지만 ‘맨손으로 성공한 걸출한 사업가’에는 이견이 없다. 특히 건설폐기물처리와 관련해서는 자타공인 최고로 꼽힌다.

산청군 단성면 길리 출신인 그는 5남3녀 8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살림은 형님의 학업 뒷바라지에 모든 것이 들어갔다. 입석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부모님 농사일을 도우느라 중학교 진학을 못했다.

17살이 되는 해, 그는 진주에서 첫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진주진양축협에서 미군에 납품할 검란(계란 검수)을 맡았다. 2년 뒤 미군 납품이 중단되자 첫 직장일도 허무하게 끝나 버렸다. 제일 잘 아는 것이 계란이다보니 19살 나이에 겁없이 계란장사에 뛰어들었다. 진주와 삼천포에서 계란을 구입해 서울 남대문시장에 내다 팔았다. 당시 제일 큰 트럭인 토요타 6톤에 계란 10만개가 실렸다. 서울을 오가던 사업도 오래가지 못해 실패했다. 이후 서울서 계란장사도 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실패만 해온 23살, 군입대가 그를 기다렸다. 군복무를 마치자마자 서울서 택시 운전대를 잡았지만 적성이 아니었다.

27살 그는 고향이나 다름없는 진주행을 결심했다. 무일푼인 그가 갈 수 있는 곳은 공사장이었다. 막일부터 잡았다. 친척이 운영하는 벽돌공장일도 했다. 그 바닥에 지내다보니 자연스레 건설업과 인연이 닿았다.

1984년 지금의 삼삼이 있게 한 ‘삼삼중기개발공사’를 차려 다시 사업에 도전했다. 당시에도 삼삼은 생소한 회사명이었다. 그는 삼삼이 작명된 이유를 털어 놓았다. “그때는 돈이 없다보니 작명소는 갈 염두도 못내 제가 지었어요. 힘 있는 기업이 되라는 의미에서 ‘석 삼(三)’자에 ‘인삼 삼(蔘)’자를 썼지요. 별다른 의미는 없어요. 삼(3)이 우리나라에서 좋은 숫자고 인삼은 기운을 내는 약초니깐 붙인 거예요.(웃음)” 그렇게 만들어진 ‘삼삼’은 이젠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회사명이 됐다.

삼삼의 첫 회사인 삼삼중기는 굴착기 한대로 시작했다. 당시 건축물에 의무적으로 두게 한 지하 방공호로 인해 굴착기 일감이 계속 들었다. 건축붐과 함께 그의 사업도 성장했다. 굴착기 작업을 하다 보니 건축폐기물 처리도 맡게 됐다. 삼삼환경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는 건설장비와 기술에 유달리 관심이 많다. 당시 공사장에 지하에 박힌 H(에이치)빔은 뽑기가 어려워 그대로 두고 공사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박 회장은 H빔을 뽑을 수 있는 ‘임발기’를 개발했다. 당시 고철값이 비싸 재미가 쏠쏠했다.

삼삼환경이 서부경남에서 내로라하는 환경업체가 된 것은 기술이 기반이 됐다. 현재 건설폐기물재활용 관련 특허만 8개를 보유하고 있다. 박 회장은 지금도 해외 환경박람회를 다니며 최신 기술동향을 파악하고 있다. 폐기물재활용 기술은 너무 앞서 가는 바람에 국내서 먹히지 않았을 때가 많을 정도다.

성공한 사업가이다 보니 일부에서는 그에게 인색하다는 평가를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지역사회에 적지 않은 기부와 도움을 펼쳤지만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다.

국제라이온스클럽 355-J지구 총재와 경남새마을협의회 부회장을 거치며 소외계층 집고쳐주기, 남강둔치 운동시설 기부 등 사비로 크고 작은 도움을 줬다. 또 남강 정화를 위해 진주교에서 주약동까지 굴착기로 대대적인 작업을 펼쳤다. 자연보호활동 공로로 장관상까지 받았다. 하지만 그가 사비로 한 정화작업을 돈을 받고 하는 사업으로 오해하는 시민이 많았다.

모교인 입석초등학교가 폐교되자 교육지원청과 논의해 1억원이 넘는 사비를 들여 선비학당과 목화 역사박물관으로 리모델링했다. 경남과기대 총동창회장을 마치고 억대 장학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그가 잘 나서지 않는 성격 때문에 오해를 산 것이 많다고 말한다. 술을 잘 하지 못하다보니 저녁시간을 외부사람과 어울리는 일도 많지 않다. 그는 일부에서 나오는 오해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알아주라고 좋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알아주겠죠.”

그는 그동안 이룬 사업 중 삼삼CC가 가장 힘들고 보람 있는 일로 기억한다. 건설기술이 있다보니 골프장 건설을 쉽게 생각했다가 하마터면 회사를 위기로 내몰 뻔 했다. 4년 이라는 공사 끝에 개장한 그날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가 매일 얼굴을 태워가며 골프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조만간 은퇴해야 하지 않겠냐는 박 회장은 기업이 우대받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한다. “기업은 이익을 내면서 고용도 하고 세금도 내고 있어요. 하지만 마치 기업은 돈만 벌고 나쁜 일만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아직 남아 있어 아쉬워요. 우리나라가 성장하려면 누군가가 계속 기업을 하려고 해야 하는데 이런 분위기에서는 쉽지 않아요. 기업이 제대로 대우받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박명식 삼삼기업 회장 약력
1949년 산청군 단성면 길리 출생
1984년 7월 삼삼중기개발공사 설립
경상남도새마을협의회 부회장 역임
국제라이온스클럽 355-J지구 총재 역임
제2대, 3대 진주시의원 역임
경남과학기술대 조경학과 졸업·동 대학원 석사
경남과학기술대 총동창회장 역임
보유기업 △삼삼종합건설 △삼삼종합중기 △삼삼산업개발 △삼삼환경 △코데코 △삼삼주유소 △주식회사 삼삼 △삼삼컨트리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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