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3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35)
  • 경남일보
  • 승인 2017.07.04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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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3 (435)

호남의 몸부림에 비해 모여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분위기는 벌써 정리단계에 있었다. 세상 어디에든 일어날 수 있는 불행한 일 하나 벌어졌다가 마무리되는 시점인 것이다. 목숨이 다한 어린애 시체 하나를 건지는 일은 이제 별스러운 호기심을 자극할 것도 없어 호남이 벌이는 슬픈 원맨쇼만 구경한다. 제 남편이었던 남자의 멱살을 잡고 같이 빠져 죽자며 물가로 끌고 가거니 버티거니 실랑이를 벌이는 젊은 내외의 비극은 잠시 잠깐 볼거리를 제공하다가, 잉태되었던 불상사는 반드시 어떤 결과를 드러내고 마는 종말을 일깨워 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양지는 자지러질 듯이 몸부림치는 호남에게 부대끼며 몸을 그저 맡기고 있다. 마음으로는 호남이를 달래야 한다, 저 진구렁에서 일으켜 세워야한다 면서도 호남에게 자신의 손이 쩍 닿는 순간 자신도 호남이와 동질의 혼령이 되어버릴까 두렵고 겁이 나서 저 먼저 호남에게 손을 내밀어서 감싸 안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미친 듯이 물로 뛰어들려다 제지하는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호남은 이제 지쳐서 울음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제 가슴과 땅바닥을 번갈아 치면서 버둥거릴 뿐이다.

양지는 어이없는 심정으로 강물을 응시했다. 갈수기라고는 하지만 생명을 앗아가는 물은 깊고 무섭다. 일 없이 듣는다면 예나 지금이나 소곤거리는 듯 다정할 물소리지만 혈육을 앗아간 물소리는 한스럽고 요사하기조차 하다. 어젯밤 그 물이 지금은 어디쯤 흘러갔는지. 너무 무심하다. 물결을 애무하듯 춤추는 윤슬도 출렁이는 물결과 어우러져 한없이 같이 흐른다. 하늘이 무너진 듯한 인간의 슬픔 따위는 아랑곳없다. 아무 일도, 참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싹을 일깨우는 바람만이 부드럽게 강기슭을 어루만지며 몰려다닌다.

소문 듣고 달려 온 여러 명의 마을 여자들이 호남을 에워싸고 같이 울었다. 호남의 일로 마을회관에서 보았던 동구엄마와 마늘밭 노파네 패들이었다. 어떤 노인네는 꼬질거리는 손수건에 싼 야쿠르트를 호남의 손에다 억지로 쥐어주려 애쓰기도 한다. 자신을 쫓아내기 위해 등 돌렸던 사람들이건만 호남은 꼬부라진 한 늙은이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애곡의 흐느낌을 쏟아놓는다.

“기운 내라. 아무캐도 산 사람은 사니라. 우리도 니가 밉어서 그랬던 거는 아닌데 일이 이리 되고 본께 죄지은 것 매이로 참 송구시럽다.”

마늘밭에서 동구엄마와 맞대거리로 호남을 비난하던 노파였다.

화해와 매듭은 왜 누군가의 희생을 먹고야 풀도록 장치되었는가. 참 어이없는 현상 중에는 주영을 못 데려가게 막던 주영이 고모의 변화도 있다. 표독스럽게 양지를 대했던 게 언제였나 싶게 미안스런 인상으로 눈물을 머금고 다가온 그녀도 양지 앞에서 통곡을 했다.

“주영이 이모 참말로 내가 못된 인간이요. 이리 될 줄 알았음사 즈이 이모가 되꼬간다 할 때 내가 와 반대를 해으꼬, 인자사 후회가 돼서 죽고 싶소.”

양지는 기막히게 주영의 고모가 미웠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 같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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