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위치 추적기
박행달(시인·경남문화관광해설사)
삶, 위치 추적기
박행달(시인·경남문화관광해설사)
  • 경남일보
  • 승인 2017.07.0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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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행달

치매환자들은 버림의 미학을 가장 잘 실천하는 자들이다.

근무하는 날이면 그 근무지로 간간이 두 여인이 약속이라도 해 놓은 것처럼 들어선다. 삶에 아주 성숙한 두 여인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손잡고. 젊은 여인은 겸연쩍은 미소를 머금고 할머니는 백치처럼 무표정이다. 필자가 근무하는 이곳에는 드나드는 대상자가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다. 그녀들의 이런 방문을 수 번 접하다보니 자연 만나러 오는 대상자가 마치 필자인 것처럼 그녀들을 반갑게 맞이하게 되었다. 그 할머니와의 대화는 늘 일방통행이다. 소통도 안 되는 그 할머니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유행가 몇 개였다. 이 할머니의 삶은 이 처럼 풍요로웠을까? 가족조차도 기억 못 하시는 분이 이처럼 유행가만은 힘차고 또렷하게 기억하고 계시니 말이다. 과거와 현재를 잊고 사는 할머니가 가슴으로 품고 있는 ‘동백아가씨’ 노랫가락이 너울이 되어 울렁이는 오늘의 오후이다.

간간이 찾아드는 그녀들의 출현, 오늘은 예사롭지 않다. 그녀들이 살아 온 세월의 시간을 대변 하듯이 칠순의 여자는 무릎까지 오는 짧은 원피스, 팔순 할머니는 긴 원피스를 입었다. 그녀들이 살아 온 이야기를 하나로 엮기 위함일까? 아마 팔순 여자의 보호자격인 그녀가 동시대를 살아 온 세상을 잊고 살아가는 그녀들의 일생을 하나로 묶어서 풀기 위한 옷차림이리라. 오늘은 팔순의 할머니 팔목에 위치 추적기도 착용하고 여하튼 평상시 접하지 못하던 그녀들의 모습이다.

“할머니 나중에 가실 때 이 시계(위치 추적기) 나 주고 가세요”

“하모 이기~ 머라꼬 낭중에 갈 때 팍 줘비고 가몬 된다아”

살아 온 긴 시간을 자유로운 우리들의 세상으로 모두 나눠 주고 싶은 것일까? 아님 자아가 가지고 있는 복잡 미묘함을 다 내려놓고 싶은 것이었을까? 그 특유의 무표정으로 냉큼 주겠다고 약속까지 해 주시는 저 팔순의 여인이여! 그대는 진정 나눔과 버림의 미학을 알고 계시는 걸까? 나눔과 버림의 미학을 어느 시점부터 실천하셨을까? 그녀의 현재 시간, 어디에 있다고 알 수 있는 이 소중한 물건을 주고 간다고 굳은 약속을 하고 계신다.

우리들은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남을 많이 아프게 하고 있다. 남과 나눠 가지기 보다는 오로지 나만의 것으로 숨기기 위하여 소중한 시간을 생채기로 남긴다. 필자는 내 주변과 어느 시점까지 왔나 그 위치를 파악하는 ‘위치 추적기’를 작동해 보는 하루였다.

 

박행달(시인·경남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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