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3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37)
  • 경남일보
  • 승인 2017.07.04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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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37)

“제가 너무 사무적으로 대했네예. 저도 어떨 땐 참 당황스러울 때가 많아요. 그럼 오늘 차는 제가 살께예. 불러서 좋은 시간 만들어 주신 댓가로. 뭐로 하실까 예. 남자들이 좋아한다는 쌍화차?”

양지가 차 주문을 하려는데 종업원이 쪼르르 엽차를 가지고 다가왔다. 다시 출입구 쪽을 살피던 오빠가 말했다.

“아가씨 차는 조금 있다 마실께요.”

엉덩이를 흔들며 걷는 것이 습관인 듯한 종업원이 딱딱 소리 나게 껌을 씹으며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빠가 마신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외삼촌은 순열이, 내가 참 안 갈쳐 줬나 그 아아 이름? 과수원에다 암탉 몇 마리를 사다 놓으셨는데, 당분간 걔 우유 값이라도 대주실 모양이더라.”

뜬금없이 웬 아버지 이야기? 싶었지만 양지는 가만히 있었다. 오빠였기에 외삼촌인 양지 아버지의 근황을 입에 올리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닐 수 있는 거였다.

“거짓말한 소행을 따지고 보상을 따지기 이전에 새끼 키우는 에미 심정을 말씀하시는데 뭐라고 드릴 말씀이 있나. 그나마 낙이 된다면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새삼스럽게 걔 우유 값은 와 예?”

“호남이 딸 그리된 걸 보고 오신 뒤라, 자라나는 애들에 대한 관심이 커진 듯도 싶고.”

아버지가 언제부터 그리 속 깊게 남 생각을 하는 양반이었나 싶은 반감이 고개를 들었지만 그냥 들어 넘기기로 했다.

그러나 잠시 후에 들어서는 아버지로 인해 오빠의 말은 의도된 서두였구나. 짐작이 됐다.

“어서 오이소.”

오빠가 마주 일어서며 인사를 하자 양지도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이 늦었제? 이놈의 차를 잘못 타 가지고 삥삥 안 둘렀더나.”

“괘안심더. 삐가리 앵겼다카더마 운제 까서 나옵니꺼?”

“헛 거참. 에미란 종자는 짐승도 영물이라. 꼬빡 스무날을 품고 앉았더마. 아침에 본깨 벌써 한 마리가 대가리를 빼족 내밀고 있는 기라.”

“하이고 그래예. 몇 개 앵ㅤㄱㅣㅆ다 캤십니꺼?”

“열다섯 개를 여었는데, 지가 한 두 개를 더 낳아 보탰는기라. 구랄이 몇 개 나온다 캐도 최소 여나므 마리는 안되겄나.”

“쪽제비하고 굉이가 댕기던데 엇가리도 좀 튼튼하게 손을 봐야 되겠네예.”

“그래야제.”

비로소 조카와의 대화가 끝났는지 아버지의 시선이 양지에게로 흘러왔다.

“때 조석이나 잘 챙기 묵어라. 젊으나 젊은 기 피색도 없이 얼굴 꼬라지가 그기 뭐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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