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들의 현주소
강경주(시조시인)
보수들의 현주소
강경주(시조시인)
  • 경남일보
  • 승인 2017.07.1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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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주
헤겔은 그의 ‘법철학’에서 “이성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인 것이며, 현실적인 것이 가장 이성적인 것이다.”라고 아리송하면서도 아주 의미 깊은 말을 하였다.

마르크스를 비롯한 좌파들은 이 말의 앞부분에 중심을 두고, 우파들은 이 말의 뒷부분에 중심을 두었다.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란 곧 인간의 사유가 언제라도 현실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으로 철학의 실천적 의미를 극대화한 주장이다. 이성적 사유는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이론적 실천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이 주장은 마르크스의 이론을 단순히 이론이 아닌 실천으로 이끌어내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반면에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인 것’이란 명제는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이미 이성적 사유의 결론이라는 주장으로서 현실을 정당화할 논거를 마련해주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것, 곧 존재하는 것이 이성적 사유의 결과일 수 없음은 명확하다. 현실은 오히려 지극히 비이성적인 탐욕의 결과이거나, 반이성적인 폭력으로 은폐된 허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적 삶에 파묻혀 사는 우리는 안타깝게도 이 허위와 위선에 더 이상 분노하지 못한다. 그 분노가 우리의 현실적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비겁하지만 현명하게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는 잠언에 몸을 떨지만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진리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리라’는 자각에 몸을 움츠리게 하여 비켜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보수들의 현주소다. 이성적 사유를 위해서는 끊임없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것은 그들의 의식이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독서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으며 현실에 안주하면서 구태의연하고 박제된 지식을 지키는 데에만 급급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안주와 방어가 곧 가장 이성적인 삶이라고, 그들과 다른 사유를 하는 사람들은 비이성적이며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위험한 적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현실을 직시하라,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을 꿈꾸라는” 체 게바라의 잠언에 조금도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네크라소프의 시구,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 자기들을 겨냥한 뜨거운 화살임을 눈치 채지 못한다.

그러나 투사들의 진보 정신은 다르다. 진리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리라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 고통에 기꺼이 온몸을 바쳐 온 사람들이다. 비록 그 진리가 영원히 자유와는 무관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온몸으로 예감하면서도 단호하게 거부하고 저항해 왔다.



강경주(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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