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흉한 시선 때문에 여름이 두려워요
음흉한 시선 때문에 여름이 두려워요
  • 경남일보
  • 승인 2017.07.1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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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뻔뻔한 시선폭력
▲ 구글 참조


직장인 최 모(29·여) 씨는 지난 30일 저녁 버스 안에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50대 남성이 민소매에 핫팬츠 차림이던 최 씨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최 씨는 시선을 피해 자리를 이동했지만, 남성은 최 씨를 따라 자리를 이동했다. 견디다 못한 최씨가 “왜 자꾸 쳐다보세요?”라고 말하자 남성은 “쳐다보라고 옷을 그렇게 입은 거 아니냐?” 화를 내며 욕설을 퍼부었다. 최 씨는 “입고 싶어서 입은 것일 뿐, 내 몸을 쳐다봐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말로만 들었던 ‘시선 폭력’을 당해 화가 난다”고 울분을 토했다.

30도를 웃도는 폭염과 습한 여름이 되면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벼워진다. 특히 여성들의 옷차림은 더 다양한 방식으로 가볍다. 허벅지를 드러낸 핫팬츠와 미니스커트, 어깨를 드러낸 오프 숄더, 배꼽과 허리가 보이는 배꼽티크롭탑 등 스타일도 다양하다.

이런 옷차림을 한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남성들은 지나가는 여성들의 몸매를 보고 점수를 매기는 등 몰상식한 행동을 일삼기도 한다. ‘시선 폭력’은 모르는 타인이 가해자가 되는 길거리 괴롭힘에 해당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015년 4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제보받은 길거리 괴롭힘 사례 총 186건을 중 시선과 몸짓에 의한 괴롭힘은 45건으로 두 번째로 많았다.

‘시선 폭력’이라는 말에는 타인의 시선을 폭력적으로 느끼는 여성들의 불쾌함이 담겨있다. 음흉한 시선으로 인해 성폭력과 맞먹을 정도로 큰 정신적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잠깐 스치는 시선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신체의 특정 부위를 노골적으로 뚫어지라 쳐다보는 것은 시선 폭력에 해당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는 ‘시선 폭력’이 폭력의 범위를 넘어 강간에 준한다며 ‘시선 강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중교통 안이나 길거리, 캠퍼스 등에서 이런 피해를 겪었다는 여성들의 사례가 끝이 없다. 대학생 황 모(21·여) 씨는모(21·여)씨는 “쳐다보지 말라고 말했다가 봉변을 당할까 무서워 자리를 피하고 만다”고 토로했다.

시선에 불쾌함을 느끼고 분노하는 여성은 점점 늘고 있지만, 남성 사이에서는 주관적 판단으로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게 불편하다는 반론도 일고 있다. 특히 대학교 익명 페이스북 페이지 대나무숲에는 이를 둘러싼 남성과 여성의 대립이 거세다.

한 남성 제보자는 “시선의 기준이 모호하다”며, “못생긴 남자가 본인을 보면 시선 강간이고, 잘생긴 남자가 본인을 보면 호감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여성 제보자는 “시선이 잠시 스치는 것과 특정 부위를 끈덕지게 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며 “외모에 따라 시선에 대한 판단이 달라질 것으로 생각하는 자체가 편협하다”고 반박했다. 한 남성은 “남자의 성적 본능으로부터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아름다운 여성에게 더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시선 폭력은 처벌기준이 모호해서 경찰에 신고가 접수되어도 제재 당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1999년 성희롱 처벌조항을 마련하던 당시, ‘특정 신체 부위를 음란한 눈빛으로 반복적으로 쳐다보는 행위’를 항목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시선 폭력’이 남녀 대립 문제로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성별과 개인에 따라 주관적으로 느낄 수는 있지만, 상대방의 동의 없는 시선 자체가 폭력적인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시선의 자유도 있지만,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도 있다. 중립적으로 시선을 처리하는 매너가 사회적으로 확산되어야 할 때다.

/오진선 시민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대나무숲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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