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4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41)
  • 경남일보
  • 승인 2017.07.0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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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41)

양지는 제 속에서 드러난 모순을 행사한다. 호남에게 했던 말과 저항하고 싶은 감정으로 아버지에게 하는 말은 다르다.

“니가 뭐라 캐도 나는 니 애비다. 노여움은 사랑에서 나고 정은 꾸짖음에서 난다꼬 애비가 자식한테 그만 말도 몬하나? 그러케 세상 망쪼란 말이다. 상 기둥감 재목들이 모두 이쑤시개가 되고 단합을 모르고 전통은 뒤비지고.”

“그 지적은 맞십니더, 그렇지만 앞으로는 아버지가 놀랠 세상만 옵니다. 누구한테 지배받거나 예속당하기 싫어하고, 어른 노릇 못하면 어른 대접도 못 받게 될 거구요. 그런 원인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는 어른들, 특히 아부지는 아무 생각도 안한다 아입니꺼. 그러니까 이제는 어른의 높은 안목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달으신 아부지가 우리를 리드할 생각하지 말고 우리를 밀어주시야 됩니더.”

“똑똑한 년, 또 내 탓이가? 이것이 보자보자 하니깨 늙은이 말이라고 지 발새 낀 때꼽만큼도 안 여기네. 지금은 핏종지깨나 끓는다꼬 큰소리친다만 내 만큼이라도 살아낼 앞날에 보장이라도 받아놨나? 햇살 볼가진 것 보모 비오기 글렀다꼬 아나 콩콩이다 이년들아.”

투덜투덜 결론을 지어놓고 아버지가 먼저 자리를 떴다. 양지는 발끝을 내려다보며 손바닥으로 무릎을 쓸었다. 참 복잡하고 허망했다. 그래도 미련을 못 버렸는지 되돌아 온 아버지가 잊고 있었던 물건을 돌려주듯이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내가 이래도 너무 한가 읽어나 봐라.”

다시 찻집으로 돌아 온 양지는 아버지가 주고 간 편지를 펼쳐보았다. 양지에게 서울로 돈을 얻으러 왔다 빈손으로 돌아간 날의 기록이었다. 참고 있기는 아무래도 자존심 상하고 울화통 터지는 일이라서 내 심정 알고 너도 가슴 아파봐라, 하는 심정을 적은 토악질 같은 흔적이었다.



―나는 지금 자결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으로 이 글을 적는다. 꼭 심장의 피를 짜서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말이다.

너한테서 찬바람 쌩쌩 나는 냉대만 받고 와서 내가 어디로 간 줄 아느냐? 세상에 그래도 너는 내 심정 이해하고 도와주리라 싶은 심정으로 째보를 찾아갔던 거다. 그러나 찾아갔던 목적은 이루지를 못하고 자식이, 아들이 얼마나 믿음직하고 좋은 것인지만 다시 한 번 사무치게 부러워하면서 돌아온 것이다.

황토재 붉은 흙밭에 쓰러져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던지 아느냐? 나는 다시 한 번 내 팔자에 치를 떨면서 뜨거운 눈물을 뿌렸다. 가슴에서 솟구치는 못 다스린 분기가 미친 사람처럼 나한테 이 필을 들게 했다.

술이나 한잔 하고 가라고? 고얀 놈. 내가 저한테 그렇게 밖에 안 보이는지 그 놈이 그러더라. 내가 저한테 술이나 얻어 마시러 간 게 아니란 것을 사정 이야기 듣고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모르는 척 하는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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