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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49>청풍호 자드락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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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8  01: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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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바라본 청풍호의 풍경.

◇청풍호가 내려다 보이는 명품 힐링길

전국엔 걷기 좋은 명품길이 무척 많다. 동해안을 따라 난 770㎞의 해파랑길, 제주도 올레길과 지리산 둘레길, 서해의 마실길과 남해안의 비치로드, 그리고 외씨버선길과 백제 미소길 등 정말 다양하다. 해안, 벼랑, 문화유적지, 산속의 오지를 잇는 이 길들의 대부분이 도시에서 떨어져 있고, 권력이나 돈을 외면한 곳에 존재하며 그 풍광이 빼어나다는 점이 명품길의 공통점이다. 권력이나 자리다툼, 돈벌이나 학벌 경쟁, 매연이나 오염 속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모두가 그런 세속적인 삶으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살아보는 것이 바람인지도 모른다. 한 순간이나마 세상의 소음과 먼지로부터 벗어나, 길을 걸으면서 행복과 힐링을 얻기 위해 명품길을 찾아나서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나지막한 산기슭의 비탈진 곳에 난 좁은 길’인 청풍호 자드락길 또한 행복과 힐링을 건네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국민체력센터(원장 이준기) 명품 걷기 클럽인 ‘건강 하나 행복 둘’ 회원들과 함께 힐링여행을 떠났다. 청풍호를 둘러싼 산간마을과 두무산으로 이어진 자드락길 6코스를 걷는 동안에 만날 산세와 호수, 그리고 낭만과 설렘을 떠올리며 출발했다.
   
청풍호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자드락길 6코스는 초입부터 가파른 오르막이다. 소나무숲길을 한 시간 반 정도 치고 올라가자 청풍호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나타났다. 나선형 계단을 통해 전망대에 오르자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내려다보이는 청풍호와 크고 작은 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정말 장관이다. 그러나 풍경에 도취된 기분도 잠시, 허연 모랫바닥을 드러낸 청풍호의 모습을 보고 탐방객들은 가뭄에 타들어가고 있는 국토를 안타까운 표정들로 바라보았다. 환희와 안타까움을 전망대에다 남겨두고, 우리는 산능선을 따라 평탄한 솔숲길을 걸어서 산마루주막에 도착했다. 산마루주막이지만 실제로는 산중턱에 있었다. 지대가 높고 거주하는 민가도 한 집뿐이라서 그런지 아직 전기마저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배터리를 이용해서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메뉴도 손두부, 부침개, 솔잎막걸리가 전부다. 이곳 솔잎막걸리는 그 맛이 일품이었는데, 민속주 경연대회에서 은상까지 수상한 이력이 있다고 한다.
 
   
 산마루주막의 입구.

 

◇토정 선생의 꿈이 서린 자드락길

산마루주막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두무산 정상과 형제봉을 향해 치고 올라갔다. 그런데 일행 중 여성 한 분이 갑자기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얼굴색이 하얗게 바뀌면서 걸음을 잘 걷질 못했다. 산행 초입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되돌아가면 그만이지만, 산행 중에 일어난 일이라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다. 함께 온 탐방객 중, 세 사람이 남아서 한 사람은 여자분의 배낭을 받아 메고, 다른 한 사람은 등 뒤를 밀고 나머지 한 사람은 앞에서 끌어주면서 가파른 고개를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고개엔 함께 온 탐방객들이 모두 기다리면서 늦게 온 일행들에게 찬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그때 문득 인도의 성자 썬다 싱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토정 이지함 선생이 수학했던 곳.

‘썬다 싱이 티베트의 랑게트로 가는 길목에서 티벳인 한 사람과 동행을 했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눈보라와 발이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으며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갈 때 추위에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 하나를 발견했다. 썬다 싱은 동행자에게 쓰러진 사람을 데리고 같이 가자고 제의를 했지만 그는 ‘그러다가는 우리도 얼어 죽소. 나는 살아야겠소.’ 하면서 매정하게 먼저 가버렸다. 썬다 싱은 쓰러진 사람을 등에 업고 눈길을 헤쳐 나갔다. 썬다 싱의 땀과 열기로 인해 등에 업힌 사람은 몸이 녹으면서 살아났다. 몇 시간 후, 썬다 싱은 눈길에서 꽁꽁 언 시체를 발견했다. 그는 혼자 살겠다고 앞서 간 동행자였다. 썬다 싱은 등에 업고 동행한 사람도 살리고 자기도 살았지만, 혼자 살겠다고 떠난 사람은 결국 죽고 말았다.’

걷기나 산행은 혼자서 빨리 가는 것보다 더불어 함께 가는 것이 더 크고 깊은 행복을 누리게 한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두무산은 중국의 두충이 산 정상에서 주변의 소백산, 월악산, 치악산 등의 산세를 보고 춤을 췄다고 하여 두무산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이러한 빼어난 산세를 지닌 두무산 정상 바로 밑에 형제봉과 독수리바위가 있고 조금만 더 가파른 길을 내려가면 토정 이지함의 수학지(修學址)가 나온다. 토정 선생이 살았던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까 선생은 풍광이 빼어난 여기까지 와서 산세와 지세를 보면서 풍수에 대한 이치를 스스로 터득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지함이 지었다는 토정비결은 개인의 사주(四柱)로 한해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점쳐 보고 1년의 계획을 미리 준비함으로써 좋은 일에는 복을 기리고, 액운은 피해갈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는 지침서다. 풍수, 수학, 역학, 천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깊은 학식을 가진 토정 선생은 핍박 받는 민초들의 삶을 위무하기 위해 토정비결을 만들었으며, 잠시 목민관으로 있을 동안에도 백성을 주인으로 섬긴 훌륭한 관리로 평가받고 있다.


 
   
호젓한 측백나무숲길의 들머리.

◇행복은 더불어 누릴 때 더 깊고 아름답다

특히 포천 현감으로 부임했을 때, 아전들이 좋은 음식을 마련해 놓고 기다리자, 상을 물리고 보리밥과 시래깃국으로 식사를 하면서, 분수에 맞지 않게 사치한 생활을 하는 관리들을 꾸짖었다는 일화는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 땅의 주인인 백성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바로 토정 선생의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꿈이 토정비결 속에 잘 드러나 있다. 토정 선생이 수양했던 곳에서 조금 더 내려오자, 자드락길의 자랑인 측백나무 숲이 나왔다. 지그재그식으로 나 있는 측백나무숲 길, 피톤치드와 맑은 공기를 마시며 내려오는 탐방객들의 입가에는 행복한 웃음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편백이나 삼나무로 조성된 숲길은 많이 보았지만 측백나무 숲길은 처음이다. 늘씬하게 뻗은 측백나무 숲길을 한 사람의 낙오자 없이, 서로의 아픔과 웃음을 걸음걸음 나누면서 걸어가는 모습에서 진정한 행복과 힐링을 느낀 하루였다. 행복은 더불어 누릴 때 더욱 깊고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박종현(시인·경남과학기술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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