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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일포럼] 노산 이은상이 쓴 거창양민학살사건의 위령비문
전점석(창원YMCA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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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8  20:4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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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의 80세 생일을 맞이해서 1956년 8월 15일 만수무강을 비는 헌수송(獻壽頌)을 썼고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을 때는 그 슬픔을 담아 묘비문을 쓴 노산 이은상이 거창양민학살사건의 위령탑 비문을 썼다. 권력자가 아니라 억울한 피해자를 위한 글이라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5월 28일 창원을 출발하였다. 산청IC에서 거창군 신원면까지의 산길은 엄청 꼬불꼬불하였다. 오지 중에서도 오지였다.

거창사건추모공원은 2004년도에 4만 9천여 평의 규모로 조성되었다. 6.25전쟁 중인 1951년 2월 9일~11일 사이에 세 차례에 걸쳐 국군에 의해 학살된 719명의 영령들을 추모하는 공원이다. 하늘로 인도한다는 천유문(天&#32657;門)을 지나서 위령탑으로 갔다. 탑 뒤편에는 2003년 6월 <거창사건 위령탑 건립에 부쳐>라는 표성흠의 시가 새겨져 있었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노산의 비문은 없었다. 발걸음을 역사교육관으로 옮겼다. 입구에 들어서니 5.16 군사정부에 의해 부서진 위령비 모형이 전시되어 있고 벽에는 노산이 쓴 박산위령비문이 크게 붙어 있었다. 세 번째 학살에서 죽은 517명을 위한 비문이다. 노산은 이 비문에서 ‘일부 미련한 국군에 의해 저질러진 천인공노할 비참한 사실’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차마 무슨 말로 기록을 남기겠느냐’고 당혹해 하면서 ‘다만 후세 자손들에게 정의와 동포애를 지키라고 경고할 따름’이라고 하였다.

교육관 전시물을 설명해주는 문화해설사에게 실제 위령탑을 볼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해설사는 맞은 편 산 아래를 가리키면서 도로변에 있다고 하였다. 추모공원 밖이었다. 신원천 다리를 건너서 국도를 따라 조금 걸으니 정자와 위령탑, 2개의 묘와 비스듬히 누운 위령비가 나란히 있었다.

사건이 난 지 3년이 지난 1954년 4월 7일에야 비로소 큰 뼈, 중간 뼈, 작은 뼈들 끼리 모아서 남자, 여자, 소아로 구분하여 3개의 박산골 합동묘에 안장하였다. 그리고 나서 6년의 세월이 흘렀다. 4.19학생혁명으로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고 난 뒤, 국회진상재조사위원회 활동을 통하여 1960년 6월에야 비로소 정확한 숫자 719명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노산 이은상의 추모시를 새긴 위령비 제막식을 11월 18일에 했다.

노산이 위령비문을 쓴 지 6개월 후 1961년 5.16 군사정부는 쿠데타 이틀 만인 5월 18일 유족회 간부 17명을 반국가단체로 몰아 투옥시켰고 6월 25일 경남지사 최갑중은 희생자 517위를 합장해 놓은 박산합동묘소에 개장명령을 내려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진 묘역은 파헤쳐졌다. 위령비문 409자는 글자 한 자 한 자를 정으로 지워서 땅 속에 파묻어버리는 일을 저질렀다. 글씨는 전혀 알아 볼 수 가 없다. 고인을 두 번 죽인 것이다. 이 당시 제주도에서는 백조일손지묘(百祖一孫之墓)란 게 있는데 그것도 똑같은 봉변을 당하였다.

유족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1967년 8월 20일에야 비로소 파헤쳐진 묘역을 겨우 비바람이나 피할 수 있도록 복구하여 남, 여 묘소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땅 속에 파묻힌 지 27년만인 1988년 2월 15일 위령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위령비를 파내었다. 그러나 완전히 파내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을 후대에게 제대로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쓰러진 위령비의 3분의 1이 땅에 묻힌 현장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노산은 1960년 9월에 위령비문을 썼는데 3년 후인 1963년에는 민주공화당 창당 선언문 초안을 썼다. 자신이 쓴 비문을 땅에 파묻은 군사정부가 민정이양의 약속을 어기고 제3공화국이 되기 위하여 만든 정당의 창당선언문이다.

 
전점석(창원YMCA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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