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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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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9  1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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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42)

어지간히 씩씩거렸으니 하마 화가 풀릴 만도 한 시간이건만 한 번 자극을 받은 울분은 좀체 가라앉지를 않는다. 아무리 다른 생각으로 방향을 돌리려고 하지만 생각의 꼬투리는 시원스레 떨어지지를 않는다. 고얀 놈,을 연발하며 벌써 몇 대짼가 수도 없이 담뱃불을 갈아붙였다. 부르르 떨리는 손길로 얼굴을 쓸어보다가 아무것도 없는 빈손을 펴들고 하염없이 들여다보기도 했다. 내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어. 도대체 내가 무얼 잘못 했냔 말이다. 나는 재티에 주저앉아서 손에 잡히는 대로 잔돌과 흙을 집어던지다가 뒤로 벌렁 눕기도 하고 그대로 핑글 굴러서 엎어진 채로 땅을 치기도 했다. 자기에게 주어진 생은 열심히 살아야하는 것, 물론 여자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남자는 더하다. 무엇보다 먼저 후손을 번성시켜야할 의무가 있다. 울타리 튼튼하게 영토를 넓히고 최고의 영예를 목표로 삼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남자는 건강하고 용맹스러워야하며 분명한 진퇴의 탁월한 안목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거대한 숲속에 떨어져 있는 하나의 씨앗이며 넓은 바닷 속의 한 마리 갯지렁이에 다를 바 없는 한 나약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얼마나 막막한 책무이던가.

여건이야 어떠하든 변명이 허용되지 않는 그 엄격한 시험의 굴레. 형체도 몸에 맞지 않는 갑옷 같은 뻣뻣한 옷에 몸을 맞추기 위해 나는 몸부림쳤다. 형제도 가까운 일가도 없이 고아처럼 외롭게 자란 나에게, 아내와 자식들처럼 가깝게 살가운 정을 나누기 알맞은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형이 있어서 형에게 미루고 동생이 있어서 동생에게 전가시킬 환경적인 여유가 없었다. 조상 대대로 내려 온 가통의 무게는 항상 짐이 되어서 내 어깨를 짓누르는 것과 함께 말이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번영을 보태기는커녕 조상에게 물려받은 것이나마 온전히 지키기도 힘들었다. 행여나 조상의 누가 될까봐, 잦다보면 허튼소리 내뱉기 쉬운 입을 다물어야 했고 행동의 절제에 신경을 쓰는 것 그게 고작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꼭 내 역량을 뛰어넘는 탁월한 후계자를 생산해서 대를 물려주어야할 책무에 시달렸다.

이 불쌍한 인간아. 나는 지금 내 뺨을 쓸다가 손바닥을 폈다. 검불 모냥 어지럽게 손금만 가득 들어있는 빈손이다. 가랑잎 모냥 윤기조차 없다. 육십 늙은이의 아무것도 쥔 것 없는 맨 주먹, 빈 손. 나는 새삼스럽게 한숨을 쉰다. 아까 보았던 나무들이 빽빽하게 둘러서 있던 산을 떠올려본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비탈진 산등성을 메우고 있었다. 경이로움이 밴 손길로 손에 닿는 대로 무슨 나무든 어루만져 보았다. 나무의 꺼끌꺼끌한 표피와 탄탄한 양감이 손끝을 타고 가슴으로 전달되어 새삼스럽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것이다. 이른 봄에 눈을 틔워서 잎을 피우고 새 가지를 늘였고 꽃과 열매를 키우고는 이제 다시 초로의 늙은이처럼 가을빛을 받고 서 있는 나무들. 거기 서있는 나무들 중 열매를 주렁주렁 단 돌감나무 하나를 발견한 순간 내 심정이 어땠는지 아나? 미물인 초목조차 제 할 일을 하는 데 나라는 존재는 무엇이라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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