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만들고 싶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만들고 싶다”
  • 김영훈
  • 승인 2017.07.1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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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수 최기수복싱체육관장
최기수 관장

‘4전 5기’ 홍수환부터 장정구, 유명우까지 70~80년대 복싱은 걸출한 스타플레이어들로 전 국민의 관심을 받으며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이들의 타이틀전이 있는 날에는 너나 할 것 없이 TV 앞에 모여 경기를 지켜봤다.

하지만 이들 이후 스타플레이어 부재, 프로 스포츠 출범 등 복합적인 요인이 발생하면서 복싱은 점차 사람들에게 외면 받으며 현재는 비인기종목의 서러움을 받고 있다.

이러한 열약한 환경 속에서도 복싱 부흥을 위해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며 인재 발굴에 힘을 쏟는 이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복싱 은메달리스트 최기수(48) 최기수복싱체육관 관장은 2002년 아시안게임을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고 고향 진주로 돌아와 복싱 인재 발굴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2002년부터 현재까지 체육관을 운영하며 숨어있는 선수를 찾아 육성시킬 뿐만 아니라 복싱을 생활체육으로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 복싱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 성과로 지난 주말(15~16일) 열린 ‘제1회 진주시복싱협회장배 및 제2회 한국국제대학교총장배 전국생활체육복싱대회’에서 최기수복싱체육관 회원들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7개를 기록하며 종합우승이라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

최 관장은 중학교 2학년 때 복싱에 입문 이듬해 전국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급성장했다.

고등학교 진학 후에는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고등학생 신분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최 관장은 각종 세계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며 명성을 쌓아갔다.

 
최기수 관장.


하지만 최 관장은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2년 바로셀로올림픽, 2000년 시드니올림픽 등 두 차례 올림픽에 출전했지만 메달과는 거리가 멀었다.

특히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는 국가대표로 선발됐지만 부상으로 대회에 출전 조차 하지 못 했다.

최 관장은 이런 올림픽에서의 불운이 자신에서 끝나길 바라며 후배들에게 모든 경험을 쏟아붓고 있다.

그는 “비록 나는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 했지만 그동안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지도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 비해 복싱의 인기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결국 ‘피겨 김연아’, ‘수영 박태환’, ‘체조 손연재’처럼 복싱에서도 스타플레이어를 키워내야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것”이라며 “꾸준한 후진 양성으로 복싱이 다시 일어 설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훈기자 hoon@gnnews.co.kr



 
최기수 (1)
최기수 최기수복싱체육관장.
최기수 (2)
최기수 최기수복싱체육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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