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강천(수필가·경상남도문인협회 사무차장)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강천(수필가·경상남도문인협회 사무차장)
  • 경남일보
  • 승인 2017.07.2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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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

무궁화의 계절이다. 거리에 가로수로 늘어선 무궁화도, 공원에 무더기로 심어진 무궁화도 제철을 만나 꽃망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다.

더위를 피해 잠시 사무실 근처 공원을 거닐었다. 그곳에도 어김없이 무궁화가 말갛게 웃고 있었다. 새하얀 꽃잎에 아로새겨진 붉은 무늬가 수박의 속살처럼 청량하다. 기다랗게 치솟은 꽃술은 또 어떤가. 도도한 여인의 콧대처럼 드높아 보인다고 혼자서 연신 감탄이다. 무궁화 꽃에 매혹되어 넋을 놓고 있자니 저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온다. 그이가 볼세라, 나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서는 먼 산을 보며 딴청을 피운다. 꽃을 보는 것이야 누가 뭐랄 사람이 있겠는가만, 무궁화에 빠져있는 모습이 혹여 오해라도 불러올까 두려운 것이다. 무엇이 나를, 나라꽃 무궁화조차 당당하게 쳐다볼 수 없게 만들어 버린 것일까.

무궁화를 보고 있으면 온 강물을 녹조로 만들어놓고 자신은 라떼 거품이나 고상하게 즐기고 있을 누군가가 겹쳐 보인다. 활짝 벌어진 꽃 안에서는 권력에 빌붙어 곡학아세하던 그들의 웃음이 환청처럼 들린다. 낙동강의 미래를 보라며 환상 같이 내세웠던 조감도 아래에 그려졌던 그 붉은 꽃이 무궁화였다. 아이들이 죽어 가는데도 자기 치장이나 하고 있었던 사람, 국민 세금으로 제 배를 채운 관인이 내미는 위선적 문서 밑바탕에 피어있는 꽃이어서 괜스레 창피스러운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위장 전입 안 한 고위관료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고, 논문 표절이나 부동산 투기, 듣도 보도 못한 비리는 왜 이리도 많은가. 그들이 가슴에 달고 자랑스럽게 내밀고 있는 배지의 상징이라서 이유 없이 부끄러운 것이다.

그것이 왜 애꿎은 무궁화 탓이랴. 꽃으로 보자면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고 예쁘기만 한 것을. 부패한 관료들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오니 그만 나에게 미운털이 박혀버린 불행한 꽃이라 안쓰럽다. 정선의 한반도 지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배경처럼 피어나 저절로 돋보이는 무궁화도 있다. 눈을 감고 뒤돌아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고 ‘까르르’거리는 천진스러운 무궁화도 있다. 콧등이며 이마에 새빨간 꽃잎을 붙이고 ‘꼬끼오’를 외치던 순진한 무궁화는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저 오만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에 둘러싸인 무궁화를 평범한 사람들 곁으로, 아이들 곁으로 되찾아 올 길은 정녕 없을까. 부끄럼 없이 무궁화를 바라볼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이나 찾아오려나.

 

강천(수필가·경상남도문인협회 사무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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