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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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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24  23: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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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46)

내가 어릴 때까지 아버지를 보면 깍듯이 샌님하며 인사를 보냈고 나를 길에서 만나면 호의적인 웃음을 보내주곤 하던 송마름이었다. 차라리 그 날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면 내 인생에 이렇게 곤죽 쑤는 일은 없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지금 속절없이 쪼그라든 우묵한 눈자위를 어루만지며 회한에 찬 한숨을 쉰다. 피맺힌 젊음의 원한이 함몰되어 있는 곳이다. 인동초처럼 모질게 키워 온 내 핏줄, 내 힘, 내 세력에 대한 열망도 이렇게 속절없이 가을 풀처럼 시들고 있다. 사나이 한 평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리라고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송가…, 재길이, 재찬이, 재명이…. 떼 몰려서 조롱하던 악동들. 그러나 최태복씨 아들입니다. 생전에 그런 우렁찬 소리를 내 귀로 듣게 된다면 이 세상에 대한 모든 원한이 봄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라는 간절함으로 하루하루를 버티었는데…. 그러나 세상에 둘도 없는 아들이, 그 핏덩이가 태어났음을 간호사로부터 전해 듣는 순간, 엄청난 무게의 해머가 다시 한 번 힘없는 내 어깨를 내리쳐서 무릎 꿇리는 것을 느꼈다. 막상 그것은 고대하고 고대하던 일에 대한 기쁨이 아니라 당혹감이었다. 나는 이제 내 능력으로는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 담배 한 갑 벌이도 없이 하루하루를 그냥 넘기고 있다. 그 어린 핏덩이는 너무나 많은 명령을 했다. 지쳐버린 것인지 아예 포기해버린 것인지, 손톱만한 것도 요구하지 않는 늙은 마누라와 다 자라버린 딸년들에게서는 느껴 보지 못한 뜨거움과 힘든 움직임을 그 아이는 운명의 주인처럼 요구하고 있다.

망할 놈의 여편네. 니 에미는 오늘도 아무런 말없이 내 말을 듣고만 있었다. 소원 풀어서 좋겠소, 그 말이 사나흘 만에 흘린 말 한 마디다. 사나이 최태복의 말년이 이렇게 초라하게 될 줄 어찌 상상이나 했으리. 네 에미가 제 구실만 반듯하게 해주었어도 어지간히 정리된 삶의 터전 위에서 나도 남들과 같은 평범한 노년을 맞고 있을 터인데 말이다. 나는 남자라고, 그 조그만 여자를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시작과 끝은 항상 그 여자에게 연루되어 있었다. 니 에미는 제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니 에미한테도 오늘 일은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참고 있자니 울화통이 차올라서 자폭해버릴 것만 같은 심정이다.

시작은 거슬러 보면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 또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처럼 또 끝없이 흐름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아들과 그의 아내, 또 그 아들의 아내와 그들 아들의 아내가 수많은 지류가 모이고 합쳐져서 큰 강의 흐름을 이루듯이 가통의 맥도 연속 발전을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장려한 맥이 내 대에 와서 절손되게 되었는데 내가 왜 미치고 환장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네 애비 최태복이가 누고? 아직 죽지 않았다. 내일은 제재소 나무장사를 불러다가 도량에 있는 느티랑 포구나무랑 모두 흥정을 해서 필요한 비용을 만들어 낼 참이다. 남아일언은 중천금인데 사나이 약속은 지켜야 될 거 아니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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