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간 일이라고? 폭력은 폭력일 뿐
연인간 일이라고? 폭력은 폭력일 뿐
  • 경남일보
  • 승인 2017.07.2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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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목숨 위협하는 데이트 폭력
서울 한복판에서 A씨는 죽음의 문턱을 경험했다. 지난 18일 서울 신당동 약수사거리 인근에서 헤어진 남자친구가 휘두른 무자비한 폭력에 앞니 3개가 빠지고 치아 2개가 부러졌으며 얼굴에는 타박상을 입었다. A씨가 남자친구 손 모씨에게 “다시는 보지 말자”고 말한 다음 벌어진 사건이었다. 살려달라는 A씨의 애원에도 주먹질과 발길질을 동반한 폭력은 계속됐다. 주변 시민들이 A씨를 도와 피신시키자 손 씨는 차량을 끌고 와 A씨와 시민에게 위협을 가하기까지 했다. 손 씨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가 왜 문제냐. 얘가 찾아오고 얘가 날 때린 건데. 맞고만 있는 게 죄라는 거냐”며 억울함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5년에 일어난 연인 간 폭력 사건은 2014년에 비해 1,000건 이상 증가한 7,692건이며, 2016년에는 무려 8,367건에 달했다. 매해 1,000건씩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 5년간 일어난 연인 간 폭력사건 중 살인이나 살인미수 혐의가 적용된 사건은 모두 467건에 달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경찰청은 작년 2월부터 한 달 동안 ‘데이트 폭력 집중 신고 기간’을 실시했다. 그 결과 1,279건이 접수되었고, 가해자 868명이 입건됐으며 61명이 구속됐다.

적발된 연인 간 폭력 사건의 가해자는 20∼30대가 58.3%로 가장 많았으며, 40∼50대가 35.6%로 두 번째를 차지했고, 피해자의 92%는 여성이었다.

연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인 ‘데이트 폭력’사건은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헤어지자는 한마디에 주먹을 휘두르고, 죽음에 이르게 하며, 때때로 연인의 가족들까지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이다.

‘데이트 폭력’이라고 하면 상해를 입히는 폭력만 떠올릴 수 있지만, 상대를 감시·통제하거나 협박하고, 폭언과 무시를 일삼거나, 동의하지 않는 성행위, 경제적인 갈취 등 합의 하에 이뤄지지 않는 모든 것들이 이에 해당한다. 사소한 집착에서 시작되어 감시로 이어지다 결국 폭력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대학생 하 모씨는 올해 초 동아리 선배와 교제를 시작했다. 그는 하씨에게 휴대전화 속 남성의 전화번호를 모조리 지울 것을 강요했다. “너를 믿지만 네 주변 남자들을 못 믿는 것”이라는 게 그의 변론이었다. 그만큼 자신을 사랑해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 하씨는 이에 응했지만, 그의 집착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급기야 업무적인 일로 남성에게 전화가 오자 그는 하씨의 전화기를 집어 던져 파손시키기까지 했다.

하씨의 경우처럼 데이트 폭력 중 초반에 나타나는 정서적인 폭력은 폭력으로 인지하기 쉽지 않다. 일상적인 데다 사랑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연애 관계가 상대를 ‘내 것’이라고 소유하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남성의 경우 여자친구 단속은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 아래 정당화되고, 남자다운 것, 낭만적인 것으로 포장되기 일쑤다.

데이트에는 폭력이 없다. 폭력이란 이름으로 된 사랑도 없다. 폭력은 그저 폭력일 뿐, 그 어떤 이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질투가 도를 넘어 설 때, 사랑이란 이름으로 집착이 목을 조여 올 때가 폭력의 신호탄이 울리는 때다.

오진선 시민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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