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 초상화
강경주 (시조시인)
누드 초상화
강경주 (시조시인)
  • 경남일보
  • 승인 2017.07.3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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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주
프랑스의 어느 유명한 작가의 작품 중에 ‘누드 초상화’라는 단편이 있다. 퍽 오래 된 작품으로 기억하지만, 요즘 그 줄거리가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작가의 집필실로 한 소녀가 찾아왔다. 한참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가가 취미로 찍는 사진 이야기로 화제가 바뀌어졌고, 그러다가 작가는 소녀를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했다. 작가를 존경하는 소녀는 스스럼없이 승낙하였다.

작가가 카메라와 조명기구 등을 준비하여 다시 방으로 들어왔을 때 소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이 소녀는 작가의 요구를, 누드 사진의 모델이 되어 달라는 것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다.

작가는 당황했다. 하지만 어차피 벗고 있는 소녀에게 누드를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고 하면 얼마나 무참하겠는가! 그럴 수는 없는 일이어서 아무 말 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누드 사진을 찍는 척하며 그녀의 얼굴만을 앵글 속에 넣었다.

며칠 뒤 사진을 인화하며 소녀의 얼굴을 열심히 들여다보던 작가는, 그 사진이 여느 얼굴 사진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알았다. 얼굴밖에 나와 있지 않은 사진이었지만, 그 얼굴에서는 소녀의 벌거벗은 모습의 뉴앙스가 묘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분명 벗지 않고 찍은 다른 얼굴 사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알몸...., 작가는 마침내 사진의 제목을 ‘누드 초상화’로 붙인다.

우리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살고 있을까? 또 우리들은 남의 얼굴을 어떻게 보며 살고 있을까? 치부를 완벽하게 포토샵하고 살거나, 그런 얼굴에 속고 사는 건 아닐까? 우리도 저 작가처럼 소녀의 얼굴에서 벌거벗은 몸을 느낄 수 있을까?

우리는 보이는 것을 보면서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다. 카메라에 담기지 않아서 눈에 보이지 않은 벌거벗은 몸이 그녀의 얼굴을 묘하게 조율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 않으면서 작용하고 있는 것들이 더 중요하고 심각한데도 우리는 짐짓 잊고 사는 것이다.

그림자는 실제로 없는 것인데 있는 것처럼 보이고, 우리가 숨쉬고 있는 공기는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없는 듯이 보인다. 그림자는 빛의 작용에 의한 허상이지만 실상처럼 보이듯이, 숱한 비리와 부정, 부패 등의 한심한 모습들은 너무나 뚜렷하여 실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씩 양심을 저당 잡힌 우리들의 사는 모습들이 그 실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남만 보고 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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