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5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53)
  • 경남일보
  • 승인 2017.07.04 00: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53)

“너 오늘 가지 말고 나랑 하룻밤이라도 자고 가라.”

“안 돼, 본의 아니게 며칠이나 태업을 했는데 일이 밀렸을 거야.”

“계집애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하나 안 들어 줄래?”

“얘도 너 답지 않게 무슨 소원씩이나? 혼자 있어야 온전히 저다워서 일하기 좋다는 애가 웬 일이야. 그 용감성은 다 어디 출장이라도 보냈냐? 싱겁긴.”

뜻밖에도 울상을 지은 정아가 빠르게 대꾸를 달았다.

“계집애야, 야밤에 들리는 바람 소리가 얼마나 섬뜩한지 넌 모르지?”

“일반 주택엔 그보다 더 심한 바람이 들이닥쳐. 온갖 집기들이 바람에 쓸리면 누군가의 싯구절처럼 진군의 기마부대가 출몰한 것처럼 정신없이 소란스럽기도 하고.”

“그렇지만 이유가 분명하니 무섭지는 않잖아.”

“지금 무섭다고 했어?”

“나도 모르겠어. 전에는 그런 적 없었는데.”

순화의 죽음으로 인한 불안감 때문이리라, 정아를 이해한 양지는 뿌리치지 못하고 그녀를 따라갔다. 그러나 이전 같지 않고 심약해진 정아의 정신상태는 심각하게 몇 번이나 목격되었다. 양지는 요즘 저의 경우를 예로 들며 가슴에서 우러난 조언을 했다.

“너 어디 몸이 심각하게 안 좋은 건 아냐?”

“그런 건 아닌데 괜히 심장이 두근거리고 안절부절 못하겠고 안타깝고 억울하고 뭔가 모르게 다급한 마음으로 물건을 집어던지고 포악하게 나를 괴롭히고 싶고, 나도 모르게 그럴 때가 많아.”

“차근차근 짚어보면 분명한 이유가 있겠지.”

“이유? 이유라면 이유 아닌 게 어딨겠니.”

정아는 괴로운 듯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얼버무렸다.

“당분간 어머니나 동생 있는데 가서 좀 있다가 안정되거든 와. 누군가 곁에 있으면 얼마나 힘이 되는데.”

“난 너하고는 다르다니까. 아우 괜찮아. 괜찮아.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그러다 또 정상으로 되겠지 뭐. 자 우리 술이나 좀 마시자. 잠 안 올 때 내가 마시던 게 있어 가지고 올게.”

정아는 씩씩한 척한 몸짓을 보이며 주방으로 가다가 힐끗 돌아보며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양지에게 대담한 폼으로 휘익 스핀 동작을 보여주며 안심을 시킨다.

잠자리에 들 동안까지의 긴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앞에 놓고 신상을 털어놓는 것 이상 없다.

양지는 이제까지 숨겨왔던 자신의 속내를 출생에서 오늘까지 죄다 털어놓았다.

“야, 그래도 넌 갖출 건 다 갖추고 살았네. 그깟 것들은 세상 사람들 팔구십 프로는 다 겪으면서 사는 거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