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
이동우 (작가·수필가)
옥수수
이동우 (작가·수필가)
  • 경남일보
  • 승인 2017.07.3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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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
한 달 만에 찾은 고향집. 마당으로 들어서니 아버지가 평상에 앉아 옥수수를 까고 있다. 알이 제법 굵고 토실하다. 지난봄에 모종을 사다 쿡쿡 찌르듯이 심어 놓은 옥수수가 대견스럽게 열매를 맺었다. 옥수수를 물에 씻어 쌀과 함께 전기밥솥에 안쳤다. 쉭, 쉭. 밥 익는 소리가 들린다. 옥수수는 잘 쪄졌을까.

우려와 달리 옥수수는 알맞게 익었다. 색깔도 모양도 먹음직스럽다. 뜨거운 옥수수를 손가락을 후후 불어가며 꺼낸다.

옥수수를 한 알씩 떼어낸다. 엄지손가락으로 톡톡 떼어 손바닥에 모아 두었다가 입에 털어 넣는다. 달싸름한 맛이 퍼진다.

생전의 어머니도 옥수수를 좋아했다. 텃밭 가장자리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심어놓은 옥수수가 무성하게 자랐다. 잎이 우거져 모기가 들끓는 옥수수 고랑을 헤집고 다니며 어머니는 치마폭에 옥수수를 따 담았다. 바람이 잘 통하는 대문간에 앉아 옥수수를 까고 봉당에 걸어 놓은 가마솥에 쪄냈다. 어머니가 쪄 준 옥수수는 달짝지근했다.

연탄불에 구워 먹는 옥수수도 맛있었다. 고추를 말리기 위해 토광에 피워 놓은 연탄불에 옥수수를 올려놓고 이리 저리 굴려가며 구웠다. 달콤했던 그 맛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옥수수를 말려 두었다가 옥수수밥을 해먹기도 했고, 옥수수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숭숭 구멍이 뚫린 옥수수떡은 바람처럼 부드러웠다.

말린 옥수수는 강냉이로 튀겨 먹었다. 주전부리가 없던 시골, 강냉이는 유일하게 겨우내 떨어지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간식거리였다.

알맹이를 떼어낸 옥수수 심은 싸릿가지를 꽂아 등긁게로 사용했다. 시골에 계신 아버지는 아직도 옥수수 등긁게를 사용하고 있다. 어머니는 떠나고 등긁게는 남았다.

어머니는 옥수수 중에서 가장 실한 것을 골라 껍질을 엮어 처마 밑에 걸어 두었다. 그렇게 말린 옥수수를 한 알씩 떼어내 봄이 되면 텃밭에 심었다. 옥수수는 무성하게 자라났고 여름 내내 먹을거리를 제공했다. 잘 자란 옥수수는 다시 씨앗이 되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일도 옥수수를 엮어 처마 밑에 걸어두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옥수수를 먹으며 어머니의 옥수수를 생각한다. 봄이 되며 어머니가 남겨 둔 옥수수 씨앗을 텃밭에 심을 것이다. 열매가 달리면 가장 실한 옥수수를 골라 씨앗으로 남겨 놓을 것이다. 어머니의 어머니와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래야 한다.

이동우 (작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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