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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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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06  2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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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55)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또 다른 젊은 여자를 아내로 얻으면서 이 세상 남자들을 한데 묶어서 저주하는 것으로 사춘기를 보냈던 정아. 강의가 있다면서 새벽녘에야 돌아 간 여교수님도 첩살이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곤 했는데 지금은 엄마의 여성스러운 모습이 참 따뜻해 보인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당혹스러울 때 있음을 고백할 때도 정아는 분노를 터뜨렸다. 남달리 당찬 의지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며 자위 삼았던 것도 사실은 허세라고 소리쳐서 동지들의 눈총을 받았다. 정아는 눈이 짓무르게 번역 일을 했고 칼럼을 기고했고 꼬마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부지런한 대가로 생활비는 걱정 없지만 더 큰 일은 손에서 일감을 놓는 순간이면 해일처럼 밀려드는 고독에서 헤어나는 방책이라고 했다. 동지들 모두 눈으로만 말했다. 어쩜 너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니.

 “다른 건 몰라도 아이는 꼭 하나 낳아서 기르고 싶어. 시험관 아기 어때?”

 인형처럼 구겨져 누운 자세로 멀거니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정아가 말했었다. 역시 같은 자세로 드러누워 있는 양지는 정아가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얼른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애들마저 없었다면 순화가 이 세상에 났던 아무 흔적도 없는 거잖아. 하는 짓마다 어른들의 눈물을 자아내는 순화의 어린아이들을 잡고 네 엄마, 네 엄마 하면서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흔들며 정아는 안타까워했었다. 

그 동안 흔들리고 있던 정아의 속마음을 볼 수 있는 단적인 증거였다. 위함 받지 못할 생명은 잉태하는 것조차 죄악이라고 부모를 성토했던 시절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행동이었다. 

너는 현태를 언제 만났니, 지금 어떻게 된 상태야? 정아가 물었지만 양지는 못들은 척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정아의 약한 모습이 마치 자기를 보는 것 같아 저항감이 불끈 눈자위를 부풀게 했지만, 이 시점에서 보이는 반발은 억지였다. 

 “여자가 아이를 낳는 순간 선성도 같이 태어난다는 뜻 너는 모르지? 생명을 품어서 부른 배는 음식을 섭취했을 때의 포만감과는 차원이 달라. 띠읏띠읏 유선이 발달하면 표현 못할 감정이 복받쳐 올라 고양되는 성숙의 의미 등등…….”

 “얘는 책에서 습득한 게 아니라 직접 애라도 낳아 본 사람처럼 말하네.”
 “니들이 몰라서 그렇지 교활하고 생뚱맞고 그게 나였던 거야.”
 “엄청난 비밀이라도 품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너?”

 “씨받이 엄마의 맏딸이었던 나도 언젠가 마음만 먹으면 순화처럼 사려 깊고 추진력 있게 여자를 상승시켜줄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꿈을 자존심으로 꽁꽁 싸놓고 버티었지.”

 그 꿈의 허무한 상실을 정아는 못 견뎌하고 있는 것이다. 그 충격은 솔로의 가능성으로 버티어 온 도도함까지도 무참하게 허물어뜨려 놓고 말았다. 저렇게 표현이라도 시원하게 하는 정아는 그래도 나보다 나은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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