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5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57)
  • 경남일보
  • 승인 2017.07.04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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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57)

“엄마가 썩어문드러지는 반면 내게는 어떤 힘이 싹터 올랐는지 아니? 독기야. 이전의 엄마가 아닌 배신과 절망에서 울고만 있을 게 아니라 생존 본능이 서서히 고개를 든 거라. 엄마의 인간적인 지극히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허점 이런 것까지 온통 배반의 연출과 직결됐어. 드디어 어느 날 직사하게 매타작을 당하는 순간이 왔어. 취기를 못 이겨서 비틀거리는 엄마 모습을 계속 보는 게 역겨워진 내가 도끼눈을 뜨고 대들었거든. 나 그때까지 참 착하고 순종적인 애였다. 우리를 위해서 오직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고 고생하는 엄마를 위로하는 일이면 죽는 시늉까지 하려든 나였거든. 상상도 못했던 내가 갑자기 반기를 들자 엄마도 깜짝 놀라서 할 말을 잃었지. 그렇지만 잠시 후 곁에 있던 빗자루를 추켜든 거야. 겁도 없이 나도 소리쳤지. 이러려고 우리를 데려왔느냐. 지금이라도 아빠께로 가겠다고. 그 순간 내 몸이 반쪽으로 쪼개지는 충격이 머리로부터 내리꽂혔지. 문제아 비행청소년은 씨앗이 따로 있는 게 아니더라고.”

“그야 환경이 백프로 아냐. 아무리 연약한 손재도 자구책을 찾게 되는 건 당연한 거고.”

“그럼, 그 때부터 엄마는 엄마가 아닌 거야. 숙제는 했나. 빨래는 했나. 방구석이나 좀 치워놓고 놀지. 설거지는 왜 이렇게 대충 했느냐는 잔소리는 끝없이 들었지만 이런 폭력까지 나올 줄은 정말 예상도 못했지. 엄마는 팽 돌아버렸어. 툭하면 매질을 미친것처럼 하데.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대들 기운도 없는 나를 꼬집고 뜯으며 끝에는 뭐랬는지 모르지? 죽자, 다 같이 죽자. 기껏 다 같이 죽기 위해 이때까지 살았냐? 속으로 흥 비웃음이 나왔어. 어른도 같잖은 말을 하면 가치나 존중감이 떨어지는 걸 그때 처음 실감한 거야. 고작 거기까지가 인간, 즉 어른 엄마의 한계더라고. 그래서 나도 같이 큰 소리로 대들었지. 이럴려고 우리를 데리고 나왔느냐고. 자, 마시자.”

둘은 다시 또 잔을 마주쳤다. 바닥에 흘린 땅콩 한 쪽을 나누어 씹었다.



“또 하나, 결정적으로 날 이렇게 만든 게 뭔지 모르지? 아직 그 얘기는 안했지? 엄마에게 혼쭐나고 인생이 시시하고 초라할 때면 나를 위로해주는 오빠가 있었어. 그는 나보다 다섯 살 위인 외사촌 오빤데 공부도 잘하고 잘 생겼고 무척 유순한 성품도 갖고 있었지. 내가 그 오빠와 가까워진 건 모두들 내가 배울 점 많은 그 오빠와 잘 지내는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거야. 나도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위로가 필요하면 오빠를 원하게 되었고. 그 오빠와 가까워진 결과로 내 인생이 파투난 결정적인 순간은 엄마로부터 직사하게 얻어맞고 그 후유증으로 누워있을 때야. 외할머니의 심부름을 그 오빠가 왔어. 딸이 어떻게 사나 걱정인 할머니는 다른 가족들 몰래 엄마를 지원했는데 비밀 보장되는 심부름꾼 역할로 오빠의 무거운 입이 선택된 거야. 아파서 누워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란 오빠는 눈물을 흘리며 뛰어나가 약을 사다 먹이고 바르고 아픈 근육을 마사지해서 풀어주기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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