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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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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10  23: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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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59)

술 취한 정아는 엇갈리는 손길로 주섬주섬 앞섶을 열었다. 술 마신 열기로 답답해서 그러나 여기고 있는데 정아가 훌렁 들춘 브래지어 아래로 수유를 했던 늙은 여자의 것처럼 축 늘어진 두 개의 유방이 드러났다. 처녀의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유방을 본 양지의 충격은 컸다. 놀라움으로 멍해진 양지의 얼굴 앞에서 정아는 자신의 젖가슴 한 쪽을 손가락질 해 보였다.

“여기를 봐.”

“흉터 같은데? 수술자국. 아까 했던 네 말, 이제야 뜻을 알겠다.”

“사랑하는 이는 멀리멀리 유배당하고 퉁퉁 분 젖가슴은 곪아터지고. 어미란 여자는 원인은 제쳐두고 결과만 따지면서 저승사자처럼 굴고……. 그게 지옥이지 사람 사는 세상이냐?”

너무나 충격적인 정아의 실토에 한동안 말을 잃고 있던 양지가 입을 열었다.

“천하의 불상년으로 너만 주홍글씨를 새기게 되고. 그 뒤 그 오빠는 어떻게 됐어? 비난은 조금 받았겠지만 남자니까 이해받고 용서받고 잘 살고 있겠지?”

“검은 지옥 가시밭길. 너무 속상해서 말하기 싫어.”

“아직 행방불명이란 말이야, 그쪽과는 아예 관심 끊었다는 뜻이야?”

참고 있던 폭발적인 웃음을 시니컬하게 토해낸 정아는 빈정거리는 음성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외국박사 국제변호사 뭐 그런 것까지 취득해서 금의환향한단다. 대학교수 초빙도 받았고.”

매몰차고 단호한 음성으로 끝을 맺은 정아는 다시 술을 들고 털어 붓듯이 마셨다.

“아, 이제야 의문이 풀린다. 난 네가 왜 그렇게 초조해 하는지. 계약한 번역일이 취소돼서 수입원이 단절되는 심각한 일인가 그런 쪽을 짐작했지.”

“내가 왜 이렇게 불안한지 곰곰 생각해 본적이 있는데 오늘 저녁 우리가 한 이야기 속에 그 이유가 있어. 어머니라는 선배가 보인 파행이 동질의 여성성으로 평상심을 깨고 내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걸 확인한 거야. 평범하고 안락한 상류가정에다 돌을 던지는 심술스런 계교가 매일 몇 개 씩 머리를 드는 데, 그게 나의 실체라는 각성을 하면 미치고 환장할 것 같애. 애틋하게 그립고 아름답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 오빠에게 내가 그래서는 안 되잖아.”

무섭고 불안하다며, 정아가 심약한 모습을 보이던 충분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울컥 측은지심이 든 양지는 앞에 앉은 정아의 손을 얼른 당겨 잡으며 위로의 마음을 실어 흔들어주었다. 흔들리는 자존감과 정체성의 혼란에 시달렸던 정아는 아주 시원한 배설을 하듯 소리 내서 엉엉 울었다. 그러던 정아가 잠시 뒤에는 미친 사람처럼 깔깔 웃으며 양지를 들여다보았다.

“양지야, 인간은 왜 자신이 만든 굴레에 매여 불행과 고통으로 허덕거리는 거지? 우리가 만약 오빠랑 무인도로 도망이라도 갔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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