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61)
그저 절실한 어떤 그리움과 이끌림에 따랐다. 그가 보이면 이번에는 제 스스로 달려가서 와락 안길 것이다. 벅찬 기쁨으로 뜨거워진 볼을 어린애처럼 비비고 거부하게 했던 그의 담대한 완력도 성벽처럼 든든하게 여길 것이다. 그 사람은 안타까운 목마름으로 나를 갖고 싶어 했다고 집 나간 아내를 맞이하는 남편처럼 담쑥 받아들일 것이다. 어릴 때 뒹굴고 놀았던 고향의 언덕처럼, 멱 감고 놀던 물처럼 스스럼없이 편안하게 품어 줄 것이다. 그리고 왜 이제야 왔느냐고, 애간장 태우면서 기다리고 기다렸다고 말할 것이다. 보송한 솜털이 피부에 닿으면 전율이 왔고 흡입하면 혼절할까봐 애써 외면하던 달고 깊었던 그 남자의 입 냄새 속에 섞여있던 향훈이며 체취. 내게도 있었던 수줍던 시절의 그 사나이. 어떤 높은 산과 깊은 물도 그와 함께라면 거뜬히 극복해 나갈 힘이 생길 것이다. 제 백사하고 그의 품에서 다시 시작하자고 고백하리라.
양지는 준비한 선물 꾸러미를 다시 챙겨들며 길을 재촉했다. 현태가 사는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서있는데 처음 온 곳인데도 전혀 낯설지 않고 건물도 주변 풍경도 모두 다정하고 편안하게 보인다. 들고 있던 선물 꾸러미를 내려놓고 차가 오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데 한 떼의 여인들이 걸어오더니 정류장에 멈춰 선다.
“한참 기다려야 할세.”
“그새 버스가 지나갔나베.”
결혼식장에라도 다녀오는지 중씰한 여인들 모두 화장을 했고 제법 돈 들인 외출복 차림을 했으나 본판인 시골사람 모습까지 다 가리지는 못했다.
“동서 내 등 좀 두드려 주게.”
뚱뚱한 몸집을 가진 한 여인이 곁에 있는 사람 앞으로 등을 들이밀며 부탁을 한다.
“왜 속이 안 좋소?”
“암캐도 얹혔는갑다.”
“속이 복개서 인자는 음식도 많이 못 먹어.”
“여편네가 손은 커서 뭔 음식을 그리 많이 장만해서, 권하는 맛에 자꾸 자꾸 먹었더니.”
두 동서의 주고받는 말 사이로 옆에 있던 여자도 껴들었다.
“아이갸 남의 잔치에 실컷 잘 얻어먹고 설마 숭보는 건 아니제?”
“농담이제. 숭이야 볼까만 식당 음식만 해도 걸더만 떡이야 잡채야 튀김이야 가짓수도 조옴 많았나.”
“얼매나 기다리던 혼산데 맘 묵고 실컷 장만했다 카더라.”
“근데 오늘 새 신랑은 지가 좋아하던 아가씨가 따로 있었다면서?”
옆에 있던 사람이 짐짓 경계하는 표정으로 주위를 훑은 다음 말을 이었다.
“쉿 그런 소리 다시는 입 밖에 내지마라.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단다. 저쪽 집에 들어가서 기분 좋을 소리는 아닌 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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