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시락 왕’ 혼케 가마도야 회장 김홍주
그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한국어가 서툰 편이었다. 그래서 한국어를 좀 더 유창하게 구사하기 위해 1967년 부모님의 모국인 한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가정환경이 넉넉지 못한 탓에 한국 유학 생활은 배고픔의 연속이었다.
너무 배가 고파 먹는장사를 하게 된다. 같이 유학 온 친구들과 돈을 모아 무교동에 있는 레스토랑 하나를 인수하여 파격적인 경영방식을 시도하기로 했다. 낮에는 가게를 레스토랑으로, 밤에는 카페로 꾸미게 된다. 주변 직장인들을 고려해서였는데, 경력이 오래된 지배인을 스카우트한 덕분에 개업식 때부터 레스토랑은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후 그 가게는 무교동의 명소가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그는 한국 유학 생활이 끝나자 가게를 청산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당시 재일동포 젊은이들은 정규 교육을 다 마쳐도 취업의 길은 막혀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술집 등 유흥업과 전당포로 대표되는 대부업, 개인 사업, 빠징꼬 등이 전부였다. 일본에 돌아가서 그가 고작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곤 구두 공장에서의 아르바이트뿐이었다. 유학 자금 마련을 위해 잠시 일한 적이 있었기에 구두 공장을 차릴 수가 있었다. 그는 패전 이후 일본 사회가 급속히 서구화되면서 구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그때 당시에 이미 일본 내 구두를 제조하는 회사만 700여 개에 달했었다. 그가 세운 ‘홍동제화’는 설립 3년 만에 일본 내 ‘빅5’ 업체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9년간 회사를 운영하고 문을 닫았다. 그는 구두 회사와 같은 패션 산업은 회사 규모가 커지면 유통 구조가 복잡해져 마진이 줄게 되며 결국에 부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견했기 때문이었다.
구두 회사를 정리한 뒤 그가 뛰어든 사업이 바로 그를 일본 도시락 업계 신화로 만든 혼케 가마도야다. ‘도시락의 나라’인 일본인의 입맛을 사로잡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후발 주자인 김 회장은 성공의 관건을 타 업체들과의 차별화에서 찾고자 하였다. 당시 일본 회사들이 만든 도시락은 신선한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냉장 보관했기 때문에 모두 데워 먹어야 했다. 하지만 혼케 가마도야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도시락으로 소비자에게 전달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당시 일본 도시락 업체들이 사용한 쌀은 평균 이하의 품질이 대부분이었지만, 혼케 가마도야는 최상의 제품만을 사용했다. 반찬 없이 밥만 먹어도 맛있는 혼케 가마도야는 어느새 일본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김 회장의 부모는 제주도 서귀포 태생이다. 1991년부터 김 회장은 서귀포 내 부동산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은퇴 후 목장이나 할 생각으로 매입한 제주도 내 토지는 264만여㎡(80만 평)나 된다. 1998년 9월에 완공된 핀크스 골프장은 2005년과 2007년 미국 골프다이제스트가 뽑은 세계 100대 골프코스로 선정됐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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