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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이 있는 힐링여행<51>백의종군로백성 속으로 걸어 돌아온 이순신 장군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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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16  01:2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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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천강 변에 세워놓은 백의종군로 표지판.

◇순례길로 자리 잡아야 할 백의종군로

여러 곳을 차례로 방문하거나 종교적으로 의미 있는 곳(聖地)을 찾아다니며 참배하는 길을 순례길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순례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예수님의 12사도 중 한 사람인 야곱(산티아고)은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를 전하기 위해 스페인 북부지방으로 전도여행을 떠나 7년여의 전도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뒤, 유대왕인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예수님의 제자 중, 첫 순교자가 된 야곱의 유골을 그 제자들이 생전에 그가 전도했던 스페인 북부지방에다 묻었는데, 그 무덤이 있는 곳이 바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이다. 순교자 야곱의 발자취를 탐방하기 위해 만든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생 장 피드 포르에서 시작해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800여㎞ 여정이다. 한 해에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순례를 한다고 한다. 말 그대로 세계의 명품 힐링길로 부상했다.

우리나라에도 산티아고 순례길 못지않은 자산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이다. 전쟁 영웅을 넘어서,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성스러운 영웅인 충무공에게 순교자라는 이름을 붙여도 결코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백의종군로를 탐방하는 코스를 필자는 감히 순례길이라 이름을 붙이고 싶다.

백의종군, 죄를 지은 군인에게 내리는 징계의 하나로 원래의 계급장을 뗀 상태에서 참전케 하여 큰 공을 세우면 다시 복귀시켜 준다는 일종의 조건부 징계이다.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는 1597년 2월말 무능한 선조임금이 내린 부산포 진격 어명을 받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책을 박탈당한 채 서울로 압송되어 사형을 선고 받은 장군이 당시 우의정이던 정탁의 상소로 4월 1일 출옥하여 권율 장군 휘하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고 서울을 떠나 아산, 공주, 삼례, 남원과 구례, 하동을 거쳐 합천군 초계에 있는 도원수 권율의 관아로 간 행로가 백의종군로다. 전체 640.4㎞ 중, 경남엔 하동(1597년 5월 26일)→산청(6월 1일)→합천(6월 2일)→산청(7월 19일)→사천(7월 22일)→하동(7월 23일)→진주(7월 27일)→하동(8월 3일)까지의 코스로 충무공이 백의종군할 때 지나간 161.5㎞ 구간이 있다.


 
   
남사예담촌의 아름다운 돌담과 골목길.


◇무더위보다 뜨거운 충무공의 애국심

이번에 떠난 백의종군로 순례는 두 번째다. 처음 순례는 진주시 수곡면 원계마을의 손경례 집에서 출발해서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 굴동 충무공이 유숙한 이희만의 집까지 탐방한 것이고, 이번에는 충무공께서 유숙했던 남사예담촌 이사재에서 출발해서 남사제 저수지-금만마을-수곡면 원계리 손경례의 집-군사훈련을 했던 진배미들녘-전략을 짰던 강정까지 순례하기로 했다.

출발지인 남사예담촌은 무척 조용했다. 마을 주민들은 보이질 않고, 솟을대문과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한테도 기세가 꺾이지 않은 더위가 온 마을을 점령하고 있었다. 먼저 충무공이 하룻밤 유숙한 곳인 이사재부터 찾았다. 남사천을 건너자 바로 이사재가 보였다. 집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백의종군이라는 형벌을 받은 장군이 이처럼 훌륭한 집에서 머물다 갔을까 하고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안내문을 보고서야 의문이 풀렸다. 장군이 권율 도원수가 있는 합천으로 가던 길에 이곳에서 하룻밤 유숙했는데, 박호원의 농사를 짓는 노비가 사는 집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박호원은 외가인 남사마을에 어머니의 묘를 섰는데, 그 묘를 관리하는 노비가 쓰던 집을 후손들이 지금의 기와집인 이사재로 개축한 것으로 보인다.
 

   
수군통제사 재임명 교서를 받았던 손경례의 집.


이사재를 나오면서 바라본 마을은 참으로 멋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제1호’로 선정되기도 한 남사예담촌을 한 바퀴 돈 뒤, 남사천 곁에 난 백의종군로를 따라갔다. 논길이나 밭둑길을 제외하면 대부분 찻길로 이어져 있어서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길이라기보다는 땡볕을 친구 삼아 걸어가기에 딱 좋은 길이었다. 이런 길이 오히려 장군의 고난을 되짚어 보고 그 뜻을 되새김질하기엔 더 잘 어울리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사 소류지를 지나 한참을 걸어서 송덕사와 금만마을에 닿았다. 다시 찻길과 시멘트길을 지나 원계리에 도착했다. 안내석을 따라 찾아간 손경례의 집, 선전관 양호가 가져온 삼도 수군통제사 재임명 교서를 받았던 곳이다. 마당에는 1965년에 세운 ‘삼도수군통제사 재수임 기념비’가 서 있고, 추녀 아래는 장군의 영정이 걸려 있었다. 조선 수군이 왜군을 격파하고 임진왜란을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키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 역사적인 공간에 이르자, 더위에 지친 필자의 두 다리에도 힘이 생겨났다. 나라와 백성을 되살리는 기회를 얻는 순간이면서 장군에겐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게 하는 기회를 가지게 한 역사적인 현장에 와 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떨려왔다.


 

   
장군이 참모들과 전략을 짰던 덕천강변의 강정.


◇감사와 보람으로 가득 채운 순례길

잠깐 마루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자신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려고 한 임금과 조정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장군은 임금과 조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다시 수군통제사가 되어 원수인 왜군을 물리치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전쟁을 끝내고 군인으로서의 소임을 다한 뒤, 자신으로 인해 국론이 분열될 것을 염려해 기꺼이 죽음의 길을 택한 것 또한 충무공을 성스러운 영웅으로 거듭나게 한 이유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충무공은 나라와 백성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다. 백의종군로를 탐방하는 것은 둘레길이나 올레길을 걷는 것과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순교자의 거룩한 뜻을 가슴 깊이 새기기 위한 순례다.

손경례의 집에서 나와 장군이 군사들을 훈련시켰던 진배미 들녘을 지나 오늘의 마지막 순례지인 덕천강변의 강정(江亭)에 이르렀을 땐 한낮의 땡볕이 등줄기에 물고랑을 내고 있었는데도 더운 줄을 몰랐다. 참모들과 함께 전략을 짜며 우국충정의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을 때도 지금처럼 더운 여름이었을 것이다. 여름보다 뜨거운 가슴을 지닌 이순신 장군의 나라사랑이 무더위를 가시게 하고 순례길 걸음걸음을 감사와 보람으로 가득 차게 했다.

/박종현(시인·경남과학기술대 청담사상연구소 연구원)

 

남사예담촌 골목길 풍경
남사예담촌 골목길 풍경.
수군통제사 재임명 교서를 받았던 손경례의 집
수군통제사 재임명 교서를 받았던 손경례의 집.
이순신 장군께서 유숙한 이사재 전경
이순신 장군께서 유숙한 이사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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