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62)
“요새 세상에 그게 뭔 비밀로 할 일이고. 현태가 원래 좋아하는 아가씨가 있어서 서울로 선까지 보러 갔었는데 그 아가씨가 먼저 등을 돌렸다네.”
“꿩 대신 닭이 된 처지를 알면 새댁이 가만있을까?”
아, 그 순간 양지는 제 귀를 의심했다. 오늘이 그럼 현태의 결혼식이며 이 사람들은 동네하객들?
“아 또, 지난 일 가지고 따따부따할게 뭐있나. 자식 낳고 살다보면 그냥 살아지는 게지.”
“우리들 시대하고 다른께 그라지. 그렇지만 그 집 세가 괜찮으니까 앞으로 무마는 잘 안되겠나. 번듯한 부모형제들 우애 있고 화목하고 먹고 사는데 걱정 없고 그만하면 복 있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게지 뭐.”
“그래 그 아가씨가 얼매나 잘났는지는 모르지만 복을 찼지.”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어른들 시키는 대로 선도 안보고 혼인을 했는데 현태 그 아 맴이 어쨌을고 그게 좀 짠하기는 하데.”
“나도 그 얘기 듣고 첫날밤이 어떨지 싶더라니까.”
듣다보니 현태의 결혼식에 다녀오는 하객들이었다. 딱 맞춤해서 현태의 결혼식 정보를 듣게 되자 양지는 기가 막혔다. 여기까지 찾아 올 만큼 자신의 마음이 변할 줄 알았다면 그렇게 미련 없이 싹 자르지 말고 한 걸음 물러서서 기다려 볼 여유라도 남겨 둘걸.
양지의 눈에는 어느 새 눈물이 맺혔다. 충격을 받은 양지가 비틀, 정류소의 벽을 잡고 미끄러져 내리자 그것을 본 사람이 소리를 질렀다.
“아이갸, 젊은 사람이 갑자기 와 이라누?”
그 말을 신호삼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양지는 얼른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리를 털로 일어났다.
“제가 빈혈이 좀 있어서 그래요.”
살펴보니 대개 현태네 푸네기들인데 행여 자신에 대한 억측이라도 생겨 본집에 전달될까 걱정이 된 양지는 얼른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그곳을 떠났다. 그러나 그녀가 도착한 곳은 현태가 결혼식을 올렸다는 예식장 앞이었다. 택시에서 내리던 그녀는 다시 목격 된 충격적인 장면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 부모들에게 인사를 건넨 현태가 막 승용차에 오르는 중 아닌가. 딸랑 딸랑 줄에 맨 깡통을 꽁무니에 달고 달려가는 허니문 카.
“손님 안 내리세요?”
택시기사가 고개 숙인 채 움직일 줄 모르는 양지에게 물었다. 양지는 간신히 목 멘 음성을 숨기고 다음 행선지를 말했다.
“아저씨, 저 좀 고속터미널로 데려다 주세요.”
양지는 그 길로 위탁모의 집을 찾아가 수연을 끌어안았다. 이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을 것인가. 주체할 수 없이 부서져 내리는 자신을 얽어매고 지탱할 강열한 물체가 필요했다.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