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이동우(작가·한국언론진흥재단)
감자
이동우(작가·한국언론진흥재단)
  • 경남일보
  • 승인 2017.08.1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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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과장
감자를 샀다.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며 하루를 보내고 있던 일요일 저녁. 점심을 먹고 목욕탕에 다녀오는 길에 감자를 팔고 있는 1톤 트럭과 마주쳤다. 푸근한 인상에 풍채 좋은 중년의 남자가 맛도 좋고 오래 저장해 놓고 먹을 수 있다며 손님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믿음직한 그의 말에도 마음이 끌렸지만, 그것보다도 감자에 깃들어있는 옛 추억이 나를 더욱 강하게 사로잡았다.

중학교 시절의 여름 저녁이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의 여름, 아버지는 담배 잎을 말리는 건조실 부엌에 있었다. 담배 잎이 거의 말라가던 시점이었고, 이제 곧 벌겋게 타오르던 불길이 꺼진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토광으로 달려가 감자를 꺼내왔다. 아버지는 감자를 불길에 묻었고, 감자가 잘 구워졌을 때를 놓치지 않고 꺼내 주었다. 감자를 꺼내는 아버지의 팔뚝은 구리 빛이었고 근육이 터질 듯 했다.

뜨거운 감자를 후후 불어가며 껍질을 까고, 바가지에 넣어 으깬 다음 소금 간을 해서 먹었다. 으깬 감자는 부드러웠으며 적당하게 뿌린 소금이 달달한 맛을 더해 주었다. 마루에 걸터앉아 먹던 그해 여름 저녁의 감자 맛은 수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아버지는 칠순이 되어서도 젊은이 못지않게 건장했다. 쌀자루도 번쩍번쩍 들어 올렸고 몇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삽질을 해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그랬던 아버지가 십 여 년 전 여름날 저녁, 교통사고를 당한 후 확연히 달라졌다. 의사는 임종을 준비하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하지만 몸은 예전 같지 않았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고 치매가 아닌 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신도 온전치 못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끝내 자신을 이겨냈다. 평생을 누워 있을 거란 의사의 말이 무색하게 뒤뚱거리기는 하지만 혼자 힘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정신도 점점 맑아졌다.

아버지는 이제 팔순이다. 여전히 뒤뚱거리며 걷고 있다. 불편한 몸으로 하루 종일 뚝딱 거린다. 부러진 삽자루를 고치고, 대문간에 있는 평상을 고친다. 난 그런 아버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버지의 행위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것임을 어렴풋이 짐작만 한다.

감자를 요리한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감자볶음을 하고, 양파를 함께 넣어 국을 끓인다. 밥을 할 때 하나씩 넣어 쪄 먹기도 한다. 감자 껍질은 벗기지 않는다. 껍질을 벗겨 음식물 쓰레기로 버리는 일도 번거롭거니와 껍질의 투박함이 좋기 때문이다. 추억을 곱씹는데 감자 껍질처럼 좋은 건 없다. 감자에 묻어 있는 흙냄새가 추억과 함께 훅 끼쳐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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