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63)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63)
  • 경남일보
  • 승인 2017.07.04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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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24 (463)

이 허망함을 벗어나야한다는 절실함이 마침내 이끌어 들인 현장. 수연이 때문에 등 돌렸던 현태였다. 차례로 자신을 떠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힘차고 간절하게 움켜잡을 끈이 필요했는데 그게 수연이다.

“아이 하나를 키운다고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닙니다. 아이 하나는 작은 우주라는 말이 있지요. 과연 그 우주를 아주 잘은 아니라도 반절은 다스릴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고민해봐야 됩니다. 제 자식을 입양 보내는 사람들을 이해해 본 적 없다면 다시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보고 결정하세요.”

기른 정으로 수연을 안고 어르던 위탁모가 진지한 음성으로 양지에게 주의를 준다. 그녀는 또 파양한 후유증으로 독버섯처럼 해악을 끼치는 악동들을 돌보았던 경험도 들려주었다. 양지도 위탁모의 말이 틀리지 않을 것은 안다. 그러나 그녀는 복잡한 심경을 정리한 차분하고 단단한 결심을 다지며 이곳으로 온 참이다. 초심으로 수연을 품어 들이는 일이다. 몸조차 성하지 않은 여자아이를 모든 것이 낯선 이국땅으로 입양 보낼 수는 없다. 나는 수연과 핏줄이 얽혀있는 이모다. 그리고 ‘고아수출국’이라는 오명에 대한 국민적 양심이 있다. 나는 수연이 태어난 나라의 동족이며 마땅히 도움을 주어야 될 인생 선배다. 수연을 우선 다른 양모를 구해서 맡겨놓고 온 양지는 아버지에게 정남은 이미 저 세상으로 갔다 밝히고 현태가 남의 사람이 되어 떠나간 것도 실토했다. 굳이 현태의 존재를 밝힌 것은 더 이상 결혼에 대한 미련을 버려달라는 경고용 선언이었다.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는 사람을 늘 곤란지경으로 몰아넣어 눈 먼 고양이가 갈밭을 헤매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두려운 혼란으로 몰아넣어 위협을 한다.

양지가 다시 은행원인 이윤서랑 맞선을 보게 된 것도 그 혼란의 연장이다. 아버지의 조름을 못 이긴 고종오빠가 다리를 놓은 상대였다. 은행원인 이윤서는 승진 공부를 하고 자기 일에 몰두하다 보니 마흔이 훌쩍 넘은 노총각 딱지가 붙어있더라 했다. 양지 역시 이번이 마지막이며 이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순간이 도래한지도 모른다는 변화된 심기에 의해 맞선 자리에 나갔다.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 선입견 없이 차나 한 잔 같이 한다는 오빠의 권에 따랐으나 맞선이라는 공식적인 만남이 처음인 양지는 쑥스러웠다. 설레는 마음도 없지 않아 드러나는 표정도 감추어야했다. 손을 번쩍 드는 남자를 바라보던 양지는 제 눈을 의심했다. 듣고 온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청년이 양지가 앉기 편하게 의자를 끌어내 주는데 큰 키에 어울리는 체격 모두 어쩜 이런 사람이 내게로 왔을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완벽했다.

“예상보다 훨씬 멋지신데요?”

양지가 자리에 앉자 이 윤서가 먼저 스스럼없이 인사말을 건넸다. 시원스럽고 상큼한 인상이 귀공자 타입 인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소탈한 시작이어서 양지도 편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말에 대꾸했다.

“듣기 좋은 말을 잘 하시는 것 보니 단수가 무척 높아 보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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