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논단] 일상 속에서의 갑질을 경계해야
오창석(창원대학교 법학과 교수)
[아침논단] 일상 속에서의 갑질을 경계해야
오창석(창원대학교 법학과 교수)
  • 경남일보
  • 승인 2017.08.20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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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특유한 갑을문화 속에서의 갑질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다시 불거진 갑질 행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몇 년 전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과 백화점 갑질모녀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소위 ‘갑질’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그 후에도 계속해서 기업오너의 갑질, 가맹점 본사의 갑질에 이어 최근에는 군대 갑질이 전국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원래 갑과 을은 그 자체가 첫째와 둘째라는 의미를 가지며, 상하관계나 우열관계가 아닌 단순한 순서를 나타내는 말이다. 특히 계약서상의 갑과 을은 서로가 계약의 상대방당사자를 나타내는 표현일 뿐이다. 그러므로 갑과 을은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여야 할 책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처럼 갑질 행태가 문제되고 있는 이유는 계약의 파트너인 상대방의 입장을 도외시 한 채 자신의 권리행사에만 치중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 속에서는 서로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분쟁의 발생을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법과 제도가 있지만, 특히 갑질 행태는 법으로 해결하기 애매한 경우도 많고, 그 해결이 국민의 정서에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각종 갑질 행태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그동안 갑의 횡포에도 숨죽이고 참아왔던 을의 반격도 시작되었다. 갑질행태를 소재로 한 영화나 TV드라마를 보면서 갑의 횡포에 의연히 맞서는 을의 반격에 시민들은 통쾌해 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심지어 을의 역갑질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다.

이처럼 언론매체 등을 통해 접하게 되는 갑의 횡포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을의 입장에서 분개하지만, 정작 일상 속에서는 누가 갑이었고 누가 을이었는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처럼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러 갔다가 옆 테이블의 손님이 종업원에게 막말을 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모습을 보면서 불쾌함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골프를 치러 가서 캐디에게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 은행에 가서 창구 직원에게 고함을 치며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 콜센터 상담원에게 폭언하는 사람들, 매표소의 기다란 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분이 풀릴 때까지 매표소 직원을 혼내면서 갑질하는 사람들은 언론을 통해서만 접했던 유명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와 가까운 지인들이다. 심지어 ‘내 돈 내고 왜 내 마음대로 못하느냐’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도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갑질 행태에 우리 함께 분개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고객의 갑질로 인한 피해자들 중에서도 특히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감정노동자’들은 고객들이 아무리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폭언·폭행을 일삼는 진상고객에 대해서도 기업의 방침에 따라 친절과 미소로 대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정부에서는 이러한 감정노동자들이 받는 정신적 상처를 예방하고 특수형태근로종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최근 부산지방법원에서는 은행 창구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모욕적인 욕설과 위협적 행동을 한 사람에게 징역 6월 실형을 선고한 바 있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의 갑질을 모두 법규로 규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서비스업계에서는 ‘고객은 왕’이라는 말이 있지만, 진상고객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서비스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나의 가족, 나의 이웃이라고 생각하고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수준은 정확히 자신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것과 자신의 권리는 상대방의 협조 속에서 비로소 완전해 질 수 있다는 인식의 변화부터 시작해야 한다.
 
오창석(창원대학교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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