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로 잃어버린 정체성, 문화로 되찾다
글 싣는 순서 <1> 오래된 것의 가치, 문화를 이끌다 |
낙후된 구도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국내에서는 노후 시설을 철거하고 도시의 깨끗한 이미지를 창출할 수 있는 재개발에 공을 들여왔다. 다만 이러한 재개발은 그 공간이 담고 있던 기억을 일시에 사라지게 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대식 재개발의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유럽에서는 50여 년 전부터 폐 산업 시설 활용사업을 시작해 기존의 공간을 지키며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최근엔 국내에서도 이러한 방향의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이에 본보는 지역 곳곳에 방치된 유휴공간을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국내외 사례와 더불어 전문가의 의견을 총 5회에 걸쳐 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하나의 공간은 그 공간을 점유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문화 등 나름의 역사를 담는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오면서 기존의 노후공간을 철거하는 사업들이 진행돼 나름의 역사가 사라지고 있다.
1950년대는 도시재건축 사업이 붐을 일었고 60년대는 도시재활성화, 70년대 도시전면재개발, 80년대 대규모 철거방식의 정비사업, 2000년대는 단독주택 재건축사업 도입 등 각 시대마다 새로운 사업이 추진되면서 삶의 문화와 역사를 품고 있던 공간이 재개발이란 명목하에 일시에 없어졌다.
수년간 마을사람들의 먹거리를 저장하던 양곡창고와 산업화 시대 삶의 무대가 됐던 공장, 추억의 골목길 등 각 공간이 담고있던 이야기들을 사라지게 만든 것이다.
특히 도시는 공동체 해체로 지역의 정체성과 활력을 잃었고 시간의 흐름을 통해 이야기를 담고 있던 집과 가게 등은 천편일률적인 건물로 대체돼 지역색 또한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이에 따라 지역재생 방법으로 도시재개발사업(urban renewal)이 아닌 ‘문화를 통한 지역 및 공간재생’이 주목받고 있다.
이 사업은 무작정 새로 짓는 신개발 위주의 전면철거방식에서 벗어나 대상 지역의 환경과 개성을 감안해 문화예술을 접목, 감성적인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다.
현재 이 사업을 도입한 인천 아트플랫폼, 담양 담빛예술창고, 전주 팔복예술공장, 서울 대림창고와 행화탕, 인천 서담재, 남해 돌창고 등은 주민들과 관광객들에게 각광받고 있다.
지역의 정체성과 과거의 역사를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이 곳들은 지역주민들에게는 향수가 있는 친숙한 공간, 관광객들에게는 이색적인 공간으로 다가와 SNS 등 미디어 매체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처럼 문화와 예술을 통한 공간재생은 지역주민들이 본인의 생활권역에서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게 하고 이는 도시재생으로 이어져 관광수익을 창출하는 기회를 마련하기도 한다.
폐건물 재생사업에 초기부터 참여한 황순우 인하대 건축학과 교수는 “아직 오래된 것에 대한 가치의 인식이 부족해 없애는 게 능사라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며 “하지만 몇몇 지자체와 민간의 노력으로 폐건물을 살려 문화공간으로 활용해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건물만 재생해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결과로 주민들과의 충분한 의사소통, 아카이브 작업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얻은 결과다”라고 덧붙였다.
박현영기자 hyun0@gnnews.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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